나라는 사람의 전공은 설레발이고, 부 전공은 호들갑이다. 또 생판 모르는 남의 일에도 어찌나 나서는지, 유난도 보통 유난스러운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정작 내 일에는 일관되게 말을 아끼는 편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다. 어지간하면,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하고, 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 본다. 해서 회사 다닐 때도 상사가 시키는 일은 대체로 군말 없이 했다. 그래서 나는 여태 내가 모셨던 상사들과 관계가 좋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는 몸 아픈 것도 미련하리만치 잘 참는다. 지난여름 출근길 버스에서 잘못 넘어져 발 뒤꿈치가 까져 새하얀 컨버스가 붉은 피로 온통 물 들었는데도 그 발을 끌고 타박타박 걸어 사무실에 가 앉아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뭘 잘못 먹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열흘을 넘겨 배앓이를 했다. 그러다 끝내 오지게 앓고는 동네 병원에 갔다. 처음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며칠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한데 어쩐 일인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약을 잘 챙겨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약을 먹고 좀 괜찮다 싶어 죽이라도 한 술 떠 넘기면 바로 다시 탈이 났다. 그렇게 계속 앓다 보니 의사 선생님께서도 혹시 다른 장기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큰 병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며, 주 전공을 살려 착각의 세계로 망상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았다.
그간 주위에서 어설프게 주워들은 의학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내 병은 누가 봐도 '췌장암'이었다. 그 후로 종합병원에 가 비장한 태도로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아 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만은 이미 지리산 언저리에 있다는 호스피스 병동에 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또다시 (다행히도)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종합병원 의사는 내게 덤덤한 얼굴로 급성 위염과 장염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다른 장기들의 기능이 떨어진 걸로 보이나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시더니 약도 고작 서너 알 되도 않게 주면서 일주일 약 먹어보고 식이 조절하고 그때도 불편하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진찰을 받고 묵직한 병원 문을 밀며 다시 현실세계로 걸어 나오는데 어찌나 만감이 교차하던지. 그렇게 나는 내 생에 또 한 번 홀로 저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왔다.
남다른 생의 이력 때문에 나는 평소에도 별나게 죽음을 염두하고 산다. 언젠가 캄캄한 밤 슬리퍼도 안 신고 화장실에 가 제대로 자빠진 후로는, 이렇게 별안간 속옷 바람에 갈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 싶어, 그 후로는 한 여름에도 잠옷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반듯하게 누워 잔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메모 한 장 사진 한 장 어디다 허투루 두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정을 적는 책상 달력도, 달이 바뀌는 즉시 바로 뜯어 문서 세단기에 갈아 버린다. 덕분에 지난해 사고 수습과정에서, 그간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증명할 길이 없어 애를 먹었다. 근태 논란에 대응키 위해 업무수첩만 보여줘도 됐는데 그 걸 못해, 건물의 CC TV까지 돌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어째 지금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휴대폰 메모장에는 갑작스러운 나의 죽음에 대비해 남겨진 가족들이 알아야 할 이런저런 정보들이 적혀있다. 읽어보면 별거 아니지만 나름 오랜 시간 신중하게 써내려 간 글이다. 거래 은행 계좌, 가입한 보험 내역, 개인적인 채권 채무 관계, 친한 친구 두엇과 하는 친목계, 무슨 일이 있어도 스무 살까지 후원하고자 다짐한 아이 이름, 죽어서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몇몇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뿐인가 연락처도 수시로 점검해 불필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전부 지운다. 삭제 기준은 늘 명확하다. 나의 부고 문자를 받아도 괜찮은 사람들. 그러니까 바꿔 말해 내 장례식에 와도 좋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생은 뜻대로 안 된다. 누가 그랬다.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고.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정말이지 타고난 명줄만큼은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호되게 배앓이를 하며 생각했다. 대체 내가 왜 아픈가 말이다. 신경 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후 속을 버린 뒤로 어지간하면 술도 맥주 한잔 이상은 안 마시고, 식단 조절도 꾸준히 해서 이제 괜찮은가 보다 했는데, 어째서 또 탈이 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속을 끓인 유력한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배앓이를 하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대강당에 모여서 사내 세미나를 들은 게 화근이었다. 지난여름부터 일 년 내내, 남의 입에 오르내린 후 대인기피에 걸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는 일절 출입을 안 했는데 그날 세미나는 하필 부서에서 필참 지시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머리수 채우러 가 앉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내내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인 데 가니, 아 이 사람들이구나, 이 사람들이 내게 돌을 던진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또다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기어이 탈이 난 거였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도 몰라주는 '나 홀로 투쟁'을 해를 바꿔가며 하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뭐 하나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체 높으신 양반님네들은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덤벼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서 매일같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걸고 붙어도 그들은 나를 책상 넘어 앉아 있는 먼지 보듯 봤다.
그러는 사이, 내가 만든 대외용 발표 자료는 사내에서 입소문을 타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자료를 받아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내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그간 나는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며, 보통 팀의 막내나 하는 일도 군말 없이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우편물까지 찾아 전 층에 돌리고 복사 용지부터 대일밴드까지 사무실 서랍마다 가득가득 사다 넣었다. 하지만 이들은 팔짱을 끼고 멀찍이 앉아 나를 등신 머저리 보듯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어디 한 번 해보자 하는 심정이 되어, 힘에 부치는 일을 해도 그들에게 일절 부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일하는 내내 " 거 봐라. 내가 이겼다. 우리 팀 일은 내가 다 한다. 이제 오만 사람들이 나만 찾는다. 결국 내가 이겼다." 하며 좋아했다.
한데 웬걸, 오히려 이 싸움에서 완벽하게 진 건 나였다. 왜냐면 그들은 애초에 나와 싸운 적도 없기에 나한테 진 적도 없는 거였다. 어차피 이마에 주홍 글씨가 박힌 나 같은 애가 제 멋대로 찧고 까부는 거, 저들의 생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거였다.
그렇다. 나는 지난 일 년간 허공에 대고 맹렬하게 칼질을 한 돈키호테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이 더 대단한 건, 이들은 이미 이 싸움에서 자기들이 이길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내 실력을 증명해도, 이들은 애초에 나 같은 천출 신분, 그러니까 일반직 여사원이라는 꼬리표로는 절대로 자기네들과 경쟁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확실하게 내 미래를 봤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저들을 이길 수 없겠구나, 이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겠구나. 하는 그 쓸쓸하고 분명한 미래 말이다.
절절하게 패배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보다 영리한 몸이 알아차리고 먼저 탈이 난 거였다. 이제 그만 하라고, 여기서 멈추라고, 그들은 내게 일을 빼앗겨 쥐 죽은 듯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바보처럼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서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자신들은 애초에 궂은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알아서 굴러주니 얼씨구나 좋았던 거라고,
그 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장장 20년의 세월을 보낸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나의 퇴사 선언에 가장 놀란 건 바로 직속 팀장님이었다. 하지만 팀장님이야말로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대놓고 말리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집을 부리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해 주시긴 했지만 문제는 본부장이었다.
그는 사직서를 반려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 정신과로 가 진단서를 끊은 나는 사직서에 첨부해 다시 결재를 올리며, 정신과 의사의 소견대로 이러이러한 병을 앓고 있고, 현재로서는 업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퇴직을 희망한다고 썼다. 그리고 이 말도 덧붙였다. " 지난 10 월부터 본부장님께선 제가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 왔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데 같은 부서 사람들은 아무 일 안 하고 출퇴근만 해도 월급을 저보다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 도 보상은커녕, 공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승진도 못합니다. 만약 본부장님께서 제 입장이라면 이 일을 계속하시겠습니까."
본부장은 그제야 한참 말을 않더니 내 처우에 관해 인사 팀과 협의해 보겠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웃었다. 아마 최근에 이 조직에 합류한 그는 여길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조직을 잘 안다. 이 조직은 절대로 예외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모르겠다. 혹여 천지가 개벽하여, 내게 승진이나 연봉 협상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그러면 또 그거대로 골 치겠지. 분명 뒤에서 다들 누구랑 잤니 어쩠니 해가며 말들을 만들어 낼 테니. 그래서 싫다.
혹자는 내 얘기에 대단히 상식적인 의문을 가질 거다. 대체 회사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게 가능하기나 하기나 한 거 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물론 가능하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노는 사람이 많아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10명 중 8명이 노는 건 문제가 되지만, 10000명 중에 8000명이 노는 건 이상하리만치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2명이 일하는 것과, 2000명이 일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이들을 마냥 저냥 내버려 두는 건 아니다. 상위직급자들도 최선을 다해 이들에게 성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들은 버틴다. 그러니까 남들과 다른 의미로 존버 하는 거다. 실제로 이들은 회사를 돈 주는 피시방이다 생각하며 버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휴대폰만 보고 게임이나 하며 직장생활이 다 이렇지 뭐, 그러면서 위에서 뭐라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기들끼리 소주 한 잔 하며 시시껄렁한 남의 얘기나 주고받고, 다음 날 다시 갓끈 동여 메고 회사에 나와 퇴근시간까지 꿋꿋하게 버티는 거다.
해서 그나마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하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 말이지, 하나를 잘하면 두 개를 시키고 두 개를 잘하면 열개를 시켜, 그러고 열개 중 한 개를 잘못하면 그에 대한 징계를 받는데, 애초에 한 개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도 하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해. 그뿐이야? 남는 시간에는 형님 아우 해가며 간 쓸개 다 빼어 아부를 하니 철철이 승진까지 해, 그러니 누가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겠어."
그러면 또 이쪽도 서로서로 위로한다. 지금 당장 실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 간다고 속상해 말라고, 그들은 곧 변별될 거라고, 사회는 생각보다 냉정하다고,
한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조직에서, 그간 실력 없고 나쁘기까지 한 사람이 속 시원하게 벌 받는 걸 본 적 없다. 오히려 일에 대한 책임감과 조직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강직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사내 정치에 희생돼서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것만 숱하게 봤다.
사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여태 내일은 모르니 오늘만 산다는 주의로 세상을 살아 매사 뭐든 대충이지만 이 와중에 지키는 생의 원칙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 의미 없는 싸움은 하지 말자" 다. 만약, 그 싸움에서 피해자가 나 하나라면 싸우지 말자. 입에 발린 사과라도 하고 말자.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싸우자. 또 충분히 이겨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결사 항전하자. 하지만, 이겨도 별 의미가 없는 싸움이라면 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조직에서 했던 싸움들이야 말로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몰랐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러니까 평소에 내 생각 " 힘들어도 내가 이만큼 내딛으면 이다음 사람, 다다음 사람은 적어도 여기까지 쉽게 오겠지" 하는 생각은 과히 망상에 가까운 거였다.
그리고 나는 퇴사하는 그날까지 내 얘기를 하고 다닌 사람들이 적어도 겉으로 티는 못 내도 속으로라도 내게 미안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마저도 착각이었다. 당연하다. 그들에겐 내가 끝까지 나쁜 년이어야 자신들이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였을까 오히려 내가 그만둔다고 하자 그들의 불 꺼진 두 눈에 간만에 섬뜩하리만치 반짝이는 빛이 돌았다.
내가 퇴직을 했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물었다. 20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기분이 어떠냐고 해서 말했다.
그냥 스타크래프트를 20년 동안 한 기분이라고, 그동안 이 안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 최선을 다해 게임을 했지만, 막상 로그아웃하고 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또 피시방을 나오고 보니 세상 사람들 전부 내가 그간 어떤 플레이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서 더 의미를 못 찾겠는 그런 기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