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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y 13. 2020

싸이월드를 추억하며

옛날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주제다 보니,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 확인하고 싶어, 지난밤 포도알 받으며 열심히 썼던 싸이월드 일기장을 찾아 미니홈피를 한참 뒤졌다.


한데 이런 ㅜ 서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어째, 일순간 그 안에 있는 수 천장의 사진과 빼곡한 메모들이 떠 오르고, 머리가 멍 해 졌다.


확인해보니 현재 싸이월드 서버 오픈 관련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나, 서비스가 재개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나무 위키: 싸이월드 참고]


생각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SNS 헤비 유저다. 지금은 대부분 남이 올리는 걸 보는 게 전부지만, 그땐 어려서 그랬나, 심각한 관종이어서 미니 홈피를 진짜 성실하게 운영했다.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안부조차 모르는 일촌들이지만, 그땐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미니 홈피를 꾸몄다. 도토리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미니미 옷을 자주 성실하게 갈아입혔고, 알록달록 미니룸도 부내나게 꾸몄으며, 괜찮은 BGM 이 나오면 주저 없이 질렀다. 특히, 이 노래 같은 것들

몇 자 쓰지도 못하는 싸이월드 대문 타이틀에 대해 수없이 많은 날 고민했고, 투데이 감정 이모티콘 하나까지 매 번 신중하게 골랐다. 날씨나 상황에 따라 빗자루를 쓸어 낙엽을 날리거나,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기도 했고, 대문 왼쪽 소개 글에는 어디서 들었는지 봤는지 모를  글귀 들을 옮겨 적고는 뻔뻔하게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메뉴바와 스킨 색상도 얼마나 구색 맞춰 잘 골랐고, 계절에 맞게 매치하고 글꼴도 그때그때 기분에 맞게 골라 썼으며, 사진첩과 게시판의 카테고리마저 카페 네이밍 하듯 나만의 방식으로 정렬하고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내가 만든 형식을 따라 하면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속으로는 그들의 수준을 한심해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폴더 하나에 올리는 사진과 글귀는 더욱더 각별하게 구성해서, 어떻게 하면 이 작은 화면으로 내 영혼의 서정성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랬다. 그땐 잠 못 이루던 새벽 두 시에 쓰는 글 들은 얼 ㅁr ㄴ r  ㄱ r 슴을 두드리던지, 그대로 대중가요 작사가가 돼도 좋을 것만 같았다.  


파도타기라는 것은 왜 또 그렇게 재밌던지, 적당한 거리에서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또 궁금한 사람이 생기면 나이와 이름 활동 지역 정보 만으로 상대를 미니홈피를 찾아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내 또래 김지영 같은 이들은 예외였다. 동일인이 너무 많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알게 된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든 나와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미니홈피에서 이들의 생김새는 물론, 일촌평으로 보는 친구관계와 센스, 문장 구성 능력, 미감 등의 기타 정보들을 확인하는 일엔 말로 다 옮기기 힘든 쾌감이 있었다.

어떤 날엔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의 정체가 별로여서 한쪽 입꼬리를 올려가며 비웃기도 했고, 어떤 날엔 정말 모니터 속에서 현실에서 본 적도 없는 미인을 보고 나 혼자 지구 밖까지 사라지는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구남친의 현여친이, 전 여친이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파도타기로 몰래 내 싸이에 잠입했는데, 내가 너무 웃겨서, 나중에 내가 싸이를 접을 때까지 일촌을 못 끊었다는 얘기를 훗날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이제 나는 그때처럼 셀카도 찍지 않고, 맞춤법도 과감하게 파괴해가며 감정으로만 채워진 허세글을 쓰지 못하지만, 가끔 그 시절 사소한 얘기로도 한참이나 낄낄대던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립다.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저런 이별에 익숙해진다는 건데, 알고 지낸 사람도 아니고 자주 가던 카페도 공원도 아니고 영원할 것 같던 인터넷 플랫폼 하고도 이별해야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런 걸 준비 없는 이별이라고 하는 건가. 어쨌든 이 마음이 조금 쓸쓸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 천리안, 하이텔, 라이코스, 버디버디, 알럽 스쿨, 네이트온 메신저, MSN 메신저, 싸이월드 모두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인스타도 페북도 트위터도 안녕. 미리미리 안녕. 하지만 브런치야, 너만은 내 곁에 오래 머물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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