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주제다 보니,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 확인하고 싶어, 지난밤 포도알 받으며 열심히 썼던 싸이월드 일기장을 찾아 미니홈피를 한참 뒤졌다.
한데 이런 ㅜ 서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어째, 일순간 그 안에 있는 수 천장의 사진과 빼곡한 메모들이 떠 오르고, 머리가 멍 해 졌다.
확인해보니 현재 싸이월드 서버 오픈 관련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나, 서비스가 재개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나무 위키: 싸이월드 참고]
생각해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SNS 헤비 유저다. 지금은 대부분 남이 올리는 걸 보는 게 전부지만, 그땐 어려서 그랬나, 심각한 관종이어서 미니 홈피를 진짜 성실하게 운영했다.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안부조차 모르는 일촌들이지만, 그땐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미니 홈피를 꾸몄다. 도토리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미니미 옷을 자주 성실하게 갈아입혔고, 알록달록 미니룸도 부내나게 꾸몄으며, 괜찮은 BGM 이 나오면 주저 없이 질렀다. 특히, 이 노래 같은 것들
몇 자 쓰지도 못하는 싸이월드 대문 타이틀에 대해 수없이 많은 날 고민했고, 투데이 감정 이모티콘 하나까지 매 번 신중하게 골랐다. 날씨나 상황에 따라 빗자루를 쓸어 낙엽을 날리거나,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기도 했고, 대문 왼쪽 소개 글에는 어디서 들었는지 봤는지 모를 글귀 들을 옮겨 적고는 뻔뻔하게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메뉴바와 스킨 색상도 얼마나 구색 맞춰 잘 골랐고, 계절에 맞게 매치하고 글꼴도 그때그때 기분에 맞게 골라 썼으며, 사진첩과 게시판의 카테고리마저 카페 네이밍 하듯 나만의 방식으로 정렬하고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내가 만든 형식을 따라 하면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속으로는 그들의 수준을 한심해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폴더 하나에 올리는 사진과 글귀는 더욱더 각별하게 구성해서, 어떻게 하면 이 작은 화면으로 내 영혼의 서정성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랬다. 그땐 잠 못 이루던 새벽 두 시에 쓰는 글 들은 얼 ㅁr ㄴ r ㄱ r 슴을 두드리던지, 그대로 대중가요 작사가가 돼도 좋을 것만 같았다.
파도타기라는 것은 왜 또 그렇게 재밌던지, 적당한 거리에서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또 궁금한 사람이 생기면 나이와 이름 활동 지역 정보 만으로 상대를 미니홈피를 찾아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내 또래 김지영 같은 이들은 예외였다. 동일인이 너무 많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알게 된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든 나와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미니홈피에서 이들의 생김새는 물론, 일촌평으로 보는 친구관계와 센스, 문장 구성 능력, 미감 등의 기타 정보들을 확인하는 일엔 말로 다 옮기기 힘든 쾌감이 있었다.
어떤 날엔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의 정체가 별로여서 한쪽 입꼬리를 올려가며 비웃기도 했고, 어떤 날엔 정말 모니터 속에서 현실에서 본 적도 없는 미인을 보고 나 혼자 지구 밖까지 사라지는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구남친의 현여친이, 전 여친이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파도타기로 몰래 내 싸이에 잠입했는데, 내가 너무 웃겨서, 나중에 내가 싸이를 접을 때까지 일촌을 못 끊었다는 얘기를 훗날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이제 나는 그때처럼 셀카도 찍지 않고, 맞춤법도 과감하게 파괴해가며 감정으로만 채워진 허세글을 쓰지 못하지만, 가끔 그 시절 사소한 얘기로도 한참이나 낄낄대던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립다.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저런 이별에 익숙해진다는 건데, 알고 지낸 사람도 아니고 자주 가던 카페도 공원도 아니고 영원할 것 같던 인터넷 플랫폼 하고도 이별해야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런 걸 준비 없는 이별이라고 하는 건가. 어쨌든 이 마음이 조금 쓸쓸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 천리안, 하이텔, 라이코스, 버디버디, 알럽 스쿨, 네이트온 메신저, MSN 메신저, 싸이월드 모두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인스타도 페북도 트위터도 안녕. 미리미리 안녕. 하지만 브런치야, 너만은 내 곁에 오래 머물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