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정하지 않겠다.

by 산만언니

처음 보육원에 갔을 때 아이들을 마주하면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한 건 "동정하지 않는다" 였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덮어놓고 나한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대책 없는 친절을 베푸는 것 자체가 난감할 것 같았다. 해서 나는 이 아이들을 그냥 우리 동네 애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하는 동안 오가며 아이들을 봐도 나는 먼저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잖아, 나 아니어도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겠어, 그 사람들 다 알고 지내려면 아이들도 피곤하겠지, 해서 나는 늘 보육원 한 귀퉁이에서 그날그날 주어진 일만 묵묵히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이 먼저 와 내게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 줬다. 그러자 아이들도 돌아가며 자기네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었다. (초딩에겐 나이가 굉장히 중요한 정보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이는 여러 번 강조해서 알려줬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나는 보기 좋게 까먹었다. 애석하게도 한 번 흘려들은 얘기를 삼일 이상 기억할 만큼 내 머리가 좋지 않은 게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녀석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한 녀석이 대뜸 나한테 "선생님 제 이름 알아요? " 하는 거다. 그러길래 내가 말했다. " 아니 몰라, 까먹었어, 미안,,,,,, 그런데 너는 내 이름 아니?" 그러자 신나게 반격의 말을 준비하던 아이가 입을 떼다 말고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때를 틈타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기억 못 해서 미안해, 대신 한 번만 더 알려주면 이번엔 절대 까먹지 않을게" 그러자 아이들은 선생님은 휴대폰도 있으면서 왜 이런 걸 적어두지 않고 까먹느냐고 다들 앞 다투어 타박하더니 이번에는 반드시 외우라며 자기들 이름과 나이를 다시 한번 알려주었고, 그제야 나는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완벽하게 외울 수 있었다.


이날 이후로 내가 성심원에 나타나면 아이들이 하나 둘 슬금슬금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럼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아이들과 놀아준 게 아니라. 그냥 함께 놀았다는 거다. 진심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신나게 놀았다. 해서 애들하고 운동장에서 농구를 해도 나는 절대 아이들을 봐주지 않았다. (사실 이건 애들을 위해 배려했다기보다, 막상 농구공을 잡으니 그냥 이기고 싶어서 죽기 살기로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덕분에 경기는 늘 흥미진진했다. 처음엔 1대 1, 그다음엔 3대 1, 그다음엔 5대 1 결국 아이들이 늘 이겼지만, 나는 또 나 나름대로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뿐인가, 어쩌다 팔씨름을 해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지기 싫어서 자꾸 지들 중에 더 센 녀석들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중학생 이상의 형들은 초딩들 보다는 좀 나아서 나하고 쉽게 붙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잖아, 형들이 나를 이겨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며, 만에 하나 나한테 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가. 그러니 고맙게도 형들이 알아서 동생들의 부탁을 거절해 주었다. 내 쪽에서는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었다.


또 한 번은 식당에서 아이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당시 중학교 1학년 된 녀석이 반에서 싸움을 했다는 얘기를 주워듣고 내가 껴들어 "오~ 싸움 잘하나 보네~ " 했더니,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 아니에요~ 저 싸움 못 해요 " 하는 거다. 해서 내가 호기롭게 스파링 자세를 잡고 양손을 펴서 녀석에게 내밀며 선생님 손 한 번 주먹으로 힘껏 쳐 봐, 얼마나 잘 싸우는지 봐 줄게 했다.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흔들어가며 거절했다. 한데 주변에서 다른 애들이 한 번 해 보라고 더 난리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별 생각이 없이, 아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봐주지 말고 제대로 때려, 남자답게"라고 했다.


그 후 아이는 있는 힘껏 내 손을 향해 강펀치를 날렸는데, 정말이지 너무 아파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아픈)손을 아이 어깨에 두른 후 이렇게 말했다. " 너 어디 가서 싸우면 안 되겠다." 그러자 아이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거 봐요 제가 못 싸운다고 했잖아요" 했다.


녀석에게 얻어맞은 손은 다음 날 저녁까지 욱신 거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 녀석 어디 가서 싸울 적에 지 주먹 약하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이 정도 통증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렇게 아이들과 친해지자 나는 종종 초딩들 축구 수업 (실내축구장) 라이딩도 해주게 됐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번 데려다주며 보니까 다른 친구들은 다 부모님들이 라이딩해주는데, 이 집 애들만 축구 수업 갈 때 시내버스 타고 학원을 가는 거였다. 물론 학원에서 따로 운영하는 셔틀이 있는데, 원장님께서 애들 축구도 공짜로 봐주시는데, 셔틀까지 얻어 태워 보낼 수 없다며 담당 수녀님이 거절하셨기에,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학원에 오가는 거였다.


그래도 녀석들은 축구가 좋아 자주 오지도 않는 버스를 타고 죽어라 축구를 하러 다녔다. 사실 이참에 수녀님 말씀대로 애들 자립심도 키울 겸 모르는 척 내버려 둬도 됐는데, 왜 그땐 그 게 그렇게 안쓰럽던지, 해서 나는 가급적 애들 축구교실 가는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나와 어슬렁 거리다가, 아이들이 나오면 마침 집에 가는 길이라며 학원까지 태워다 주곤 했다. (물론 귀가 서비스까지 했다.)


다만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다른 일로 정히 바쁘거나 하면 더러 못 데려다주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려 애썼다. 특히 날이 궂어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녀석들 버스 타고 갈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쓰여,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퇴근하면 서둘러 성심원으로 가 애들을 학원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따라 축구장에 가 서 다른 보호자들과 섞여 아이들 뛰는 모습도 봤다. 그러면 애들은 축구하는 내내 철조망 뒤에 내가 아직 있는지 자꾸 확인하며 뛰었다.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패스 좋더라" "골 감각 있더라" 같은 칭찬을 해주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집에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차 안에서 이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어떤 날에는 시설 안에서 나눌 수 없는 속 깊은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얘기는 이거다. " 선생님 저는요, 학교에서 애들이 고아라고 놀리고 때려도 그냥 참아요. 아무런 대꾸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요 " 그래서 내가 너무 놀라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참는 거냐고 물으니 " 교실에서 선생님 안 계실 때 싸움이 나면 무조건 저희 잘못이거든요. 아무도 저희 말을 안 믿어줘요. 그런 일을 하도 겪으니까, 이제는 그냥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참아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기어이 나는 애한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걸 왜 참아, 참을 게 따로 있지, 참지 말고 너도 때려 " 하니까,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가 말했다. " 아니 그게, 앞으로도 저는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니까, 솔직히 어쩔 수 없어요. 차라리 쫌 억울해도 참는 게 낫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마음이 안 좋던지, 하지만 속에서 치 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지금은 내 얘기를 믿을 수 없겠지만, 어른 되면 이깟 일 아무것도 아니야, 스무 살이 되어 다른 도시에 가서 살잖아, 네가 어디서 살았든 무엇을 했든 사람들 너한테 크게 관심 없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그러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고, 나는 확신에 찬 눈으로 아이들을 다시 봤다. 그러자 아이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보육원에 사는 애들한테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다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이들의 양육을 포기한 것도 어른들이고, 이런 시설을 지어 모여 살게 하는 것도 어른들이며, 세상에 그런 몹쓸 편견과 차별적인 문화를 만들어 놓은 것도 순전히 어른들인데, 어째서 그 책임을, 우리 아이들이 온전히 떠안고 살아야 하는가.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현실은 만만치 않게 아이들을 힘들게 할 거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만큼은 차마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우리가 이 집 애들과 다른 건 우리가 친 사고들은 대부분 집안에서 조용히 해결되지만, 아무래도 이 집 애들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에서 모여 살아서 같은 사고를 쳐도 요란 뻑적지근하게 온 동네에 소문이 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만이라도, 직접 겪어 보기 전에 아이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일반 가정 아이들이 다른 게 있다면 " 주거 환경"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세상일 참 희한하지, 가끔 이렇게 세상 밖은 정 떨어지게 차가운데, 정작 보육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대책 없이 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뭐가 좋아서, 자꾸 봉사하러 가냐고 물으면 내가 이런 대답을 할까, "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을 하러 온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


진짜다. 나는 아마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십 년 이상 매일 새벽 아이들 먹으라고 주방 앞에 몰래 신선한 우유를 박스채 두고 가는 분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경기가 좋든 나쁘든 아이들의 생일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떡과 케이크를 공짜로 내어 주시는 떡집 사장님과 제과점 사장님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도 몰랐을 것이다. 그뿐인가,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병원 응급실에서 수술을 집도한 한 외과 전문의가 여태 아이를 잊지 않고 , 정기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 이곳에 와 아이 상태를 살펴주신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해서 나 역시 자꾸 틈만 나면 보육원으로 달려가는 거다. 그곳의 날씨는 종종 흐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무척이나 맑고 따뜻하니까, 그리고 말해 무엇할까, 하느님이 키우시는 아이들은 볼 때마다 쑥쑥 힘차게 자라나고 있어, 자고 있는 애들 뒤통수만 보고와도 왠지 모르게 내가 다 뿌듯해 좋다.


이런 이유에서,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갈 것 같다.


* 참고 : 제가 봉사를 다니는 시설은 남자아이들만 있는 시설입니다. 여자 원생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보육합니다.

* 초등학생 아이 책상에 붙어있던 메모


+ 덧붙여 : 지난 2월 이후 서울시 산하 재단 아동 보육시설은 감염 법 예방조치 실행령 이후로 외부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가정 체험 (후원 아동 연계) 등의 프로그램도 전면 중단하였습니다. 원생의 입출입도 제한하고 있으며, 시설 안에서조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창 사랑받아 마땅할 시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룰 둔다는 걸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곁에서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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