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모르고 살 때 나는 연애를 해도, 아니 거의 모든 관계에서 언제나 손해 보지 않고 살려고 애썼다. 마치 서로 마주 보고 시소에 앉은 듯한 상태로, 타인과 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언제나 서로 균형 맞추기를 했다. 그러다 자칫 어느 한쪽의 무게가 기울면, 나는 항상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내가 기울든 상대가 기울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살면서 사람이 고팠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도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다 나이 서른을 넘기자 연애감정이란 번식기에 접어든 인간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고, 그 후 더 나이를 먹자 결혼은 지각이 있는 성인 여성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빠듯한 세상에, 남들까지 신경 쓰고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다. 그러니 이런 마음으로 누굴 만나겠는가.
주변에서 걱정 어린 투로 "때 놓치지 말고 결혼해라,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여자 혼자서는 못 산다." 같은 말을 해도 겉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 코웃음 쳤다. 아닌 말로, 농경 사회도 아니고 요즘 같은 문명사회에서 이게 웬 유난들인가 싶었다. 가족은 늘 애초에 주어진 관계만으로 벅 차다고 생각했다. 더는 이 세상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숫자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다. 저 때 내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는 사실을, (PTSD의 일반적인 후유증 중 하나가 정서적 무감각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삼풍 사고 이후 마음이 서서히 돌처럼 굳어 갔는데, 나는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티브이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광고를 봐도 '끼니가 없어 어쩌나, 저런 흙탕물을 마셔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안 들고, 대체 저 지역은 80년대부터 전 세계가 도와줬는데 왜 아직도 저 지경인가, 언제까지 남의 도움으로 살 건가,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두고 한 번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그저 나이를 먹어 자연스럽게 성격이 변한 건 줄 알았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라 본래 나는 외로움을 안 타는 줄 알았다. 한데 천만에, 그럴 리 없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저 때는 젊었기에 뭐든 나 혼자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이 내 안에 가득하지 않았나 싶다. 한데 과연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아니다. 본래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탄다. 그저 이때는 내가 내 안의 결핍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런 내게 친한 친구가 혼자 그러고 사는 거 너무 삭막하지 않냐,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고양이라도 한 마리라도 데려다 키우라고 했을 땐 정색을 하며 나와 같은 공간에 숨을 쉬는 생명체가 있는 거 끔찍하다. 싫다. 하며 고개까지 세차게 져었다.
그러다 보육원에 봉사를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이 어째서 다른 생명체들과 무리를 이루어 사는지 알게 됐다. 나는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아무리 간 밤에 죽고 싶었데도 보육원 문만 열고 들어가면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아이들 때문에 절로 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깊은숨을 쉬면 세상살이에 굴곡진 깊은 근심이 거짓말처럼 잊혀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 눈에 밟힌다" 혹은 "눈에 선하다" 같은 말들이 어떤 감정을 설명하는지도 알게 됐다. 시설에 칭얼대다 잠든 아이를 두고 오는 밤이면 말 그대로 아이가 눈에 선하고 눈에 밟혀 잠 못 이루는 날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곳에서 어떤 식의 사랑은 '영영 잊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됐다. 내 사랑이 만약 타인을 힘들게 하고 숨 막히게 하는 거라면, 내 존재가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거라면, 기꺼이 내 쪽에서 물러서 주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사실까지 배웠다. 이건 비단 연인관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내가 아이들에게 배운 사랑은, 헌신과 배려를 기반으로 한 철저히 타인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이에 관해, 오늘은 보육원에서 만났던 유안이(가명)의 얘기를 하려 한다. 유안이는 백일 때부터 (내 딴에) 업어 키운 아이라 유독 정이 많이 들은 애였다. 하지만 나는 이유안이, 황유 안으로 이름을 바꾼 그 순간부터 아이를 본 적 없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 엄마에게 따로 연락해 아이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싫다. 아이가 나를 보면 자연스레 이곳을 떠올릴 테고,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 공연히 불안할 것 같아 싫다. 그런 연유에서 앞으로도 나는 유안이를 영영 안 보고 살 생각이다. 여기 일이랑 아주 잊고 그 집에서 막내아들로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유안이가 시설을 떠난 후에도 나는 한 번도 유안이를 잊은 적 없다. 유안이를 생각하는 내 마음도 어느 하나 훼손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세상엔 이런 식의 사랑도 있다는 걸,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가끔 친한 수녀님께 묻는다. 수녀님 어째서 남을 사랑하는 건 이렇게 힘들까요. 보통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 아니에요. 남을 미워하는 건 너무 간단하고 쉬운데 말이죠. 그러면 우리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어려운 거야. 남 미워하는 건 쉽지, 누구나 하지. 시간 없어도 해. 그런데 사랑하려면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관심도 가져야 하고 굉장히 복잡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렇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어려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