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움은 못되지만 위로는 되어줄게

by 산만언니

젊은 날에 자의로 타의로 몇 번이나 저승문을 두드리고 온 나는 그 후 오래도록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잊고 살았다. 특히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것들 그러니까, 신앙이니, 마음이니 하는 얘기들이 더 했다. 더러 어떤 이들은 죽음을 경험한 후 영적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던데, 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일들로 인해 사람은 죽음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하며, 신은 그리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다. 절대자가 없어서 세상이 이 지경이라 생각했고, 인간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믿었다. 마치 티브이가 고장 나면 바로 폐기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망가진 티브이에게 전에 어떤 영상을 송출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듯, 인간 역시 죽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뭘 해도 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한 평생 재물에 대한 욕심은 덜 부리며 살 수 있었지만, 그만큼 또 사는 재미 또한 느끼지 못했다. 저승에서 호출하면 언제고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날 것 같은 마음으로 살다 보니, 생의 어느 시점이 되니 뭘 더 특별히 하고 싶지도 않았고, 뭘 더 갖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사가 늘 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 식이 되어버렸으니까. 특히 서른 이후의 생은 더했다. 항상 어제 같은 오늘 또 오늘 같은 내일의 연속이었다.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가던 데만 갔으니, 생에 변화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한데 우연히 회사 근처의 한 보육원에서 나는 예기치 못한 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봉사활동을 하며 겁에 질려 우는 아이들을 안아 들며 단단하게 얼어붙어있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런 아이들을 자꾸 업고 안을수록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성격도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내 생에 아이들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찾아들게 된 것이다.


가령 아이들을 따라 '후후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커다란 솜사탕' 같은 동요를 부르면,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식이었다. 나무젓가락에 실처럼 매달린 구름 같은 솜사탕, 침을 묻히면 방울방울 진한 분홍색과 파란색의 짙은 결정들이 생기던 솜사탕, 또 그 솜사탕을 들고 가족들과 대공원에 갔던 기억들, 집에 오는 길에 버스에서 졸아서 아빠 등에 업혀왔던 순간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렇게 아이들과 만나며 나는 그간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 따뜻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기억들 덕분에 전과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마치 안경을 새로 맞춰 쓴 것처럼, 전에 보지 못하던 세상을 좀 더 분명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오랜 세월 불행한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살려고 의식적으로 감정을 통제했더니, 결국 나는 행복한 감정조차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로 인해 내 마음이 너무도 삭막해져 있었다는 걸.


그러고 보니 그간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아이폰이나 자동차같이 인간이 만든 물질문명의 산물들은 어디까지나 소유에 의한 성취나 만족의 영역이지, 사람을 실제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은 아니었다.

사람을 가슴 벅차고 뭉클하게 만들어 주는 건, 전부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이른 봄날에 피는 들꽃이나,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처럼 그저 보고만 있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들처럼 말하자면 신이 만든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자 관심의 축이 점차적으로 죽음 이후에서 현재, 지금 이 순간으로 바뀌었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드디어 두 발을 땅에 딛게 된 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어디 가서 내 입으로 보육원에서 봉사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먼저 얘기한 적 없다. 물론 어떤 목적이 따로 있을 때는 했다. 가령 아이들 후원이나 학습봉사자를 구해야 할 때는 사람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외에의 순간에는 굳이 내 입으로 나 이런 일한다. 저런 일 한다.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면 항상 나는 이곳에서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어 온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서 여태 나는 내가 받아온 이 마음들을 아이들에게 전부 되갚아주고자 노력했다. 한데 어쩐 일인지 하나같이 잘 안 됐다. 하다못해 가정위탁 하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고작해야 그깟 후원금 얼마가 전부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한테 생각보다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어쩐지 좀 울적해졌다.


한데 요즘은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이들에게 분명 나라는 존재는 사는데 큰 도움 안 될 거다. 하지만 먼 훗날 언젠가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는 위로는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 역시 믿었던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했고, 적은 희망으로 오랜 시간 버텨왔으며, 수 없이 많은 날 벽에 가 부딪혔고, 또 기어이 다시 일어섰으니, 이것 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물론 나도 안다. 세상에 나 말고 불행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고통이 줄거나 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희한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 나하고 비슷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있다고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움된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이 집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해서 아이들이 사는 일에 힘에 부쳐 나를 찾아오면 그때 그 아이가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사랑스럽고 엉뚱했으며 귀여웠는지, 원한다면 밤이 새도록 말해줄 수 있을 거 같다.


사실 위로라는 게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다. 지난날 내가 세상으로부터 위로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봐도 대부분 거창한 게 아니었다. 무심결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 한 소절, 우연히 꺼내 읽은 소설 속 한 구절,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 한 장면처럼 모두 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이었다. 또 결코 요란하지 않은 타인의 시선과 반응 들, 이를테면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어" 정도의 간단한 대답들, 그러니까 내 앞에서 나보다 더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게 아니라, 네 마음 나도 알아 정도의 내용을 담아 건네는 담백한 시선 정도, 그런 것들을 만나면 어느새 마음 한쪽의 둑이 터지며 그간 쌓여있던 감정들이 모두 쏟아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생각한 거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 인생에 도움은 안 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생에 위로는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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