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
보육원 일에 열심히 던 시절, 개인적으로 사는 일에 많이 지쳐있었다. 진짜 매일 아침 포스트잇에 '안녕' 한 마디 써넣고 가까운 물가에 가 입을 틀어막고 뛰어들고 싶었으니까. 그땐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벅찼다. 통장의 잔고는 바닥이 났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가족들끼리는 서로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주고받았으며 주변 사람들과도 계속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어쩌면 그렇게 발등의 불은 꺼도 꺼도 꺼지지 않던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을 물 한 모금 축일 새도 없이 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속이 그 모양이니 겉으로 티가 안 날리 없지, 끝내 회사에서도 물의를 일으켰다. 어느 날 근무 중에 업무용 차를 몰고 나가 지하 주차장에서 사고를 내서, 나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 일로 나는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지하 주차장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한 달 사이에 살이 무려 십 킬로가 빠졌다. 머리로는 잘한 거 없으니, 주는 벌 달게 받자. 했지만, 속은 겉과 다른 이유들로 들끓었다.
이 시기를 지나자 앓고 있던 마음의 병은 악화됐고, 이때부터 나는 대인기피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못했고, 이따금 다시 자해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그때는 이 일로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게 회사원에게는 회사가 전부다. 학생들만 같은 반 친구들과의 갈등에 괴로운 게 아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의 갈등은 말 그대로, 고문이었다.
여태 살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같은 말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다짐했는데, 이 무렵 내 입에서는 이 말이 하루가 멀다 않고 나왔다. 결국 길고 긴 자책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때 알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 해서 새로운 불행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것을,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나는 내가 살면서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가 바로 체면과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서 보육원으로 더 내달렸다. 현실을 잊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도망치듯 나는 그곳으로 갔다. 아이들을 보고 오면 몸이 힘들어서라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으니까,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유를 먹이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게 좋았고, 꼬물 거리는 작은 생명을 포대기로 업고 있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게 알음알음 내가 주말에 보육원에 다니며 봉사한다는 소문이 주변에 돌자 언제 한 번은 심리학을 전공했다던 전 직장 동료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지금 자의식 과잉의 상태다. 쉽고 빠르게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보육원에서 일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너의 상태를 수녀님들이 이용하는 거다. 그러니 빨리 정신 차리고 보육원에서 나와, 너 자신을 위한 일을 해라."
틀린 말은 아니다. 고마운 충고다. 어쩌면 그때 나는 진짜 그랬는지도 모른다. 호승심과 인정 욕구가 남다른 내가 그 무렵 직장에서 손상된 내 존재가치를 보육원에서라도 증명받는 게 그렇게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 시절을 견뎌내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도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길 바랬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속이 검은 어른들에게 지쳐있었기에, 이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솔직한 태도에 매력을 느꼈다. 애들이 얼마나 솔직하냐면, 언제 한 번은 어깨 넘어까지 기르던 머리를 귀밑으로 싹둑 커트하고 갔더니, 녀석들이 일제히 달려와하는 말이 " 와~ 완전 아줌마네, 진짜 이상하다. " 였다. 그뿐인가 옆에 계시던 수녀님께서는 한 술 더 떴다." 어때? 애들 눈 정확하지?"
언뜻 보기에는 이기적인 것 같은 아이들이지만, 애들은 가만히 보면 타인과 경계가 없다. 아이들은 수시로 내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다. 자기가 좋으면 나도 좋은 거다. 해서 애들은 툭하면 지들이 먹던 걸, 그것도 침이 잔뜩 묻어 눅눅한 과자를 내 입에 강제로 밀어 넣었고, 지들이 좋아하는 스티커도 내 가방이며 휴대폰이며 가리지 않고 붙였다. 그뿐인가, 애들은 내 값비싼 실크 블라우스에도 자연스레 콧물을 비볐다. 한데 희한하지 그때마다 나는 웃음이 났다.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 마음 이곳저곳에 쳐 놓은 벽과 한계들이 무너졌다. 덕분에 이제 나는 타인의 '무례' 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담대한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또 매사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 재고 따지기 좋아하던 성격이었는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태도로 삶의 중심이 바뀌어갔다. 그리고 이 변화는 아주 느리고 분명하게 이루어졌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내 행동은 손해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는 보육원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얻었다. 그렇다. 나는 마더 테레사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했다면 이렇게 오랜 세월 그곳에 가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분명 나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게 있는 거다.
전에 언젠가 일본의 유명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TED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인간의 내면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고, 이를 그는 개인 <Individual>에서 분인 <dividual>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개인의 내면은, 좀 더 세밀하게 나뉘어서, 엄마를 만날 때의 나,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로 나누어진다고, 그러니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그 많은 '분인'들 중 마음에 드는 '분인'을 자주 만나라고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때 마음에 드는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곳에서 만나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