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 아이는 특별해요

by 산만언니

어느 평온한 주말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보육원 운동장에 있었다. 계단에는 초등학생들이, 풀밭에는 아장아장 걷는 애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운동장 안으로 빨간색 모닝 한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미끄러져 들어와 멈춰 서더니, 운전석에서 화가 난듯한 엄마가 내려서는 뒷자리로 가 자신의 딸아이로 보이는 애를 마구 잡이로 끌어내려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는 문을 쾅하고 세차게 닫았다.


그 후 차는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차의 뒤꽁무니를 쫓아 초등학교 삼사 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싹싹 비비고 울면서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잘못했어요" 하며 따라갔다.


잠시 후 차는 완전히 멈춰 서더니, 기절하기 일보 직전의 아이를 다시 싣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시설의 정문을 빠져나갔다. 어찌 손 써 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이날 그 집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안다. 그 엄마가 차 한 대 몰고 시설에 와서 채 오분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어떻게 여러 사람의 마음에 날 선 비수를 꽂아 넣었는지, 계단을 올려다보니 아니나 달라,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차가 떠난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아이들은 건물 안으로 전부 들어가 버렸다.


또 다른 날이다. 그날도 바삐 움직이는 나를 어떤 엄마가 잡아 세우더니, 다짜고짜 원장 수녀님을 좀 봐야겠다고 한다. 아마도 나를 보육원 직원으로 착각한 것 같다. 마침 원장수녀님과 장을 보고 온 길이었기에 충분히 오해할 만하기도 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일단, 무슨 일로 그러시냐고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소 격양된 어조로 얼굴에 대고 손부채질 까지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지금 여기서 청소를 시키는 거죠? 저는 우리 애들 아기들 보라고 데려온 거예요, 어디까지나 교육 차원에서, 처음부터 청소시킨다고 말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서울에서 힘들게 왔는데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죠?" 해서 나는 그녀 옆에 서있던 어린 친구들을 바라보며, 아쉽게도 자녀분들 나이가 어려 아이들 돌 보는 건 위험해서 안 되겠다고, 시설관리규정상 그건 안 되는 일이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느냐는듯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모르시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특별한 애들이에요 "


그 후 내가 이 엄마한테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날 끝없이 이어지던 그녀의 집안 내력과 자식 자랑을 들으며 속으로 " 그 집 아이들처럼 이 집 애들도 특별합니다." 했던 건 분명하게 기억난다.


애석하게도 나는 자식이 없어, 그 엄마 마음을 여태 모른다. 또 그 엄마가 알면 까무러칠 얘기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집 애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 일은 앞서 말한 빨간색 모닝처럼 꽤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물론 이런 분들만 봉사하러 오시는 건 아니다. 열에 아홉 아니 백의 구십구는 말 그대로 다 천사다. 어떤 가족은 멀리서 주말마다 오시는데, 시설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집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주일 동안 우리 아들 힘 엄청 아껴놨으니까 힘쓰는 거 쟤 다 시키세요. 그러면 그 집 아들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아직 이마에 여드름이 송골송골 맺힌 꼬마친구가 말이다. 아니나 달라 그 가족은 아빠가 앞장서서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닥치는 대로 한다. 그래서인지 성심원 입구에 그 가족이 들어서면 벌써 내 마음이 다 든든하다.


또 이웃 아파트에 사는 자매는 얼마나 기특한지, 자기들이 성당에서 먼저 이곳에 봉사를 온 후 거꾸로 엄마 아빠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 부모님도 참 대단하시지, 아기들을 어쩜 그리 잘 다루시는지, 이 가족만 나타나면 아가의 집에서 울음소리가 어느새 그친다.


게다가 이 집 아이들이 더 특별하게 기억나는 건, 수녀님이 따로 간식을 챙겨줘도 애들이 극구 사양했다는 거다. 언제 한 번은 내가 그 집 아빠한테 애들이 군것질을 안 좋아하느냐고 따로 물어본 적 있을 정도다. 그랬더니 그 아빠 웃으며 하는 말이 그건 아니란다. 아이들 스스로 성심원에서 물 한 모금 축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그간 그렇게 간식을 거절해왔다는 거다. 아이들은 속이 깊었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내 머릿속엔 자신의 아이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 줄 아느냐고 소리쳤던 그 엄마 애들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데, 시간 날 때마다 보육원에 와서 진심으로 아이들을 돌보던 친구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다. 진심을 이길 방법은 없는 거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말하길 공감은 나와 남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능력은 사회생활하는데 생각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공감능력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사는 동안 내내 남과 불필요하게 대립하고 갈등하고 평생 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엄마 말 안 들으면 언제든 고아원에 내다 버릴 거야' 같은 협박성 훈육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 있으면 나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처럼 자아를 확장시켜 생각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웃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 내가 따로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다 하며 따지고 들고 당부하고 다니지 않아도 자신의 아이들이 얼마나 특별한지 굳이 보육원에 와 자랑하는 철없는 어른들도 사라지리라 믿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혹시 몰라서 쓴다. 보육원에 죄를 짓고 와 있는 아이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에서 탯줄 잘못 잡은 것도 죄라고 따지고 든다면 할 말이야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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