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민이는 고양이구나

by 산만언니

시설 아동의 입양은 대개 영유아 시기에 결정된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을 받아들이는데 저항감이 적어 그렇다.


이런 이유로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무렵이 되면 입양 얘기가 거의 오가지 않는다. 희한하지,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도 사춘기 아이들도 전부 가족이라는 연대는 필요할 텐데 말이다.


말해 무엇할까, 보육원에서 자라는 애들은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많이 운다. 어쩔 수 없다. 신생아 때부터 또래 아이들이 모여 사니, 서로 경쟁하느라 많이 운다. 정말 어떨 땐 얘들이 뭘 알고 우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종일 서럽게 울기만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이런 애들하고 매일같이 붙어 지내는 수녀님과 복지사 선생님들 심정은 어떨까, 해서 이 집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무조건 아이 하나라도 더 가정으로 입양 보내려 애를 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 수녀님들은 어디서 누가 이 집 애 하나 입양한다고 하면 그곳이 설령 불구덩이라 해도, 1초의 망설임 없이 뛰어들 거다. 그 정도로 성심원 식구들은 아이들 입양에 절박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잘해보려는 마음만 가지고는 뭐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입양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만으로는 잘 안 된다. 일단 핏줄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는 아직까지 입양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 G7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이 자라가 여태 고아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국내 입양이 상당히 드물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말 기준 국내 입양은 인구 오천만 인 나라에서 465명이 전부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3억 인구가 13만 5천 명의 아이를 입양했으며 독일의 경우에는 아이 하나당 입양 경쟁률이 14 대 1이나 된다.


또 입양 과정에서 다른 뜻밖의 일들 때문에 입양이 취소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별 탈 없이 잘 가지만 어쩌다 한 번씩은, 꼭 아이의 생모 생부가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아,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거나, 입양 당사자가 아니라 시댁이나 친정식구들의 갑작스러운 반대나 만류에 부딪혀 입양이 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입양 가기 좋은 시절 그러니까 낯을 안 가리고 아무에게나 안기는 시절을 놓치고 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보육원에 있는 올해 9살이 된 동민이(기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녀석은 어쩐 일인지 어려서부터 희한하게 결정적인 순간에 입양이 틀어지곤 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세 번이나 일이 잘 안 됐다.


그런데 지난봄 기적처럼 목동에 사는 한 가정이 동민이를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좋던지,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학령기 아동에게는 정말 흔치 않은 기회다) 내 마음이 이런데 우리 수녀님들 마음은 어땠을까, 아닌 게 아니라, 그때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한데 말이다. 사람 일 참 알 수 없지, 이번엔 특이하게 동민이가 이 가정을 거부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리 중간에 어른들이 나서서 애를 얼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좀처럼 아이는 이 가족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동민이 입양 얘기가 오가던 지난해 봄은 코로나로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던 시절이었다. 말 그대로 엎친데 덮친 상황이었다. 하여 지난 2월부터 성심원은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시설 아동의 외출과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시기에는 다른 때와 다르게 입양을 희망하는 가정과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없어 낯가림이 심한 동민이에게 더 가혹한 상황이 전개됐다.


덕분에 동민이와 이 가족은 당시에 시설 뒷마당에 급조된 야외 테이블에서 주말에 한 번씩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한데 막상 해 보니까, 이거 진짜 못할 짓이었다. 글쎄 모르겠다. 다 큰 어른들은 이렇게 마주 앉아 커피 한잔씩 마시면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지도, 하지만 초등학생인 동민이에겐 정말 못할 짓이다 싶었다.


그렇다고 시설 차원에서 동민이한테만 예외규정을 적용해 외출을 허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보육원에는 생후 한 달도 채 안 된 아기도 있다. 또 그때만 해도 코로나 시국이 이렇게 장기화될 줄은 아무도 몰랐기에, 입양가정과의 연계 프로그램 개발 등에 대해 어떤 대안도 마련하기 힘든 시점이었다.


게다가 동민이는 타고 난 성향 자체가 극히 내향적이라 평소에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다. 남보다 속이 깊은 대신에 낯을 심하게 가린다. 그러니 그 자리가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편했을까, 해서 아이는 이 집 식구들을 보면 본의 아니게 자꾸 피해 다니느라 바빴다.


그 자리에 동행한 수녀님께서 그러시는데 이 집에서 방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는 혼자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 밖으로 고개 한 번 제대로 내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뿐인가, 동민이는 이분들이 싸오는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니 이 집 식구들은 이 집 식구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서 다들 겉으로는 서로 괜찮다 이해한다 기다린다 하며 헤어졌지만, 이 가족도 아마 번번이 적잖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갔을 거다.


그러자 이런 동민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수녀님께서 밤낮으로 애간장을 태우셨다. 아무래도 저러다가, 이 집에서 포기한다 소리 할 거 같다고, 조바심을 내셨다. 상황이 이러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해서 어느 날 나는 이 가족이 보육원에 동민이를 보러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밖에서 다른 일을 보다가, 득달같이 달려갔다. 가는 동안은 분명 그분들 뵙고 동민이를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접견장소에서 그분들과 아이가 함께 있는 걸 보니, 차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동민이가 테이블도 아니고, 저 멀리 건물 뒤로 가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 식구들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아이가 눈 앞에 나타나 주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화가 나던지, 결국 나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렇게 분탕을 치고 말았다. "아이고 우리 동민이 알고 보니 고양이네 고양이야,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 모양을 한 고양이 있어요" 그러고도 성에 안 차서 나는 지나가는 차까지 붙들어 세우고 말했다. " 여기 이동민 고양이 있어요, 고양이 한 마리 데려가세요."


내가 이렇게 수선을 피우자,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이 집 엄마 아빠는 이틈에 잠깐이나마 긴장을 풀고 웃었는데, 문제는 동민이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팔꿈치를 들어 올려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나 같아도 펑펑 울 게 생겼다. 그간 믿고 따르던 수녀님들이 하나같이 자꾸 생전 처음 보는 아줌마 아저씨 따라가 함께 살라고 등 떠미는 것도 싫어 죽겠는데, 나까지 나타나 거들고 앉았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러웠을까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끝내 이 가정에서 입양을 포기하겠다 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수녀님은 깊이 상심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까지 상처 받았으니 말 다 했지 뭐.


물론 그분들 심정 모르는 거 아니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한다. 아니 그렇잖아. 아무리 상대가 초등학생이라 해도, 완전무결한 선의가 매주 그렇게 찢겨나가는데, 그 누가 좋을까.


그렇게 이 일은 마무리됐고, 동민이를 예뻐하는 우리 모두는 이 일로 오래도록 마음 아파해야 했다.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생각해도 딱히 별 다른 묘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건 둘째치고 당사자인 애가 안 간다는데, 주변에서 뭘 더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해서 우리 수녀님 하고 나하고 이 얘기를 하다 보면 늘 얘기의 끝은 언제나 더는 어디 가서 구차하게 아이 좀 대신 키워달라고 부탁하지 말고, 그냥 내가 빨리 자리 잡아 동민이 데려다 키우는 게 낫겠다는 얘기로 끝나곤 한다. 물론 나는 재산도 없는 데다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기에 아이를 위탁할 처지가 안 된다. 해서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수녀님들도 이런 내 의견에 반대한다. 동민이는 지금 여기서도 잘 크니 나는 내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진짜 수녀님 말마따나 아이가 사는 곳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디에 있든 아이 마음 편하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천국일 테니까


그땐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지난봄에 동민이를 찾아주셨던 분들도 참 대단한 분들 같다. 말이 쉽지 이분들처럼 학령기 아동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 건 드문 일이니까, 해서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애석하게도 동민이랑은 인연이 안 됐지만 이분들이 절대로 입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 집에 동민이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가족의 사랑이 절실한 아이가 꼭 들어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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