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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Oct 13. 2020

갑자기, 이 가을의 안부

안녕하세요. 브런치 독자 여러분, 산만 언니입니다. 반갑습니다. 다들 이 시절 잘 견디고 계시는지요.


요즘은 아침저녁 안부 묻는 것마저 어쩐지 조심스럽습니다. 사는 게 힘들 땐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도 고까운 법이니까요.


최근에 저는 라디오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한데 이 일이 생각보다 기쁘네요. 옛날 방식으로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게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라디오를 켜고 청소를 하니, 매일 하는 일인데 그 시간이 어쩐지 전보다 훨씬 행복하더라고요.


저 역시 요즘 사는 게 버거워, 지난주에는 여주에 있는 수도원에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잠깐 이었지만 그곳에 머물며 수녀님께서 해주시는 따뜻한 음식 먹고 오랜만에 잘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 기운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희한하죠. 수도원에 가 짐을 풀으니, 서울서 내내 들끓던 속이 바로 한 김 빠졌습니다. 전에는 누가 밤새 거꾸로 매달고 한참 흔들고 내려놓은 것처럼 가만히 앉아있어도 속이 뒤집혀 견딜 수 없었는데, 수도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침저녁으로 휘몰아치기만 하던 마음이 금세 차분해졌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마음이 어지럽다 하시는 분들 계시면, 어디라도 좋으니 일상을 벗어나 산 깊은 곳에 찾아들어 잠깐이라도 바람 쐬시길 권합니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침묵 안에 홀로 있으니, 더없이 좋더라고요. (평소에도 저는 혼자 있는데, 왜 이다지도 열렬히 혼자 있고 싶은지)  


서있는 위치가 바뀌면 시야가 바뀐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나무만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숲을 보니, 그간 애태웠던 생의 고민들이 전부 하찮게 여겨지더라는 것을, 하여 추천합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도 울창한 도시의 시멘트 숲을 벗어나, 산과 들 한복판으로 '풍덩' 하시길


아닌 게 아니라, 저야말로 요사이 간만에 속을 좀 끓였습니다. 개인적인 일도 뜻대로 안 풀려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이 와중에 슬프기 짝이 없는 보육원 얘기까지 쓰려니, 매일 같이 마음속 어딘가가 소리를 내며 뚝뚝 부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일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 뒤늦게 고생 짤짤히 하고 있습니다.


보육원 아이들 관련해서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째 캐면 캘수록, 우리 아이들이 겪는 일이 훨씬 더 사실감 있게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해서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그 사이 한 글자도 더는 적지 못했고요.


거짓말 조금 보태, 얼마 전까지 이거 진짜 못할 짓이다 싶은 생각에, 다 때려치우고 뒤로 벌렁 나자빠져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런 제 마음을 알리 없는 독자분들이 어떻게들 알고들 그리 찾아오시는지, 그 사이 야금야금 구독자 수가 제법 늘었습니다.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쓰자. 이렇게 내 얘기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자꾸 나타나 찾아오니,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해서 방황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게 다 여러분 덕분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힘든 한 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자본주의 출신답게, 잔인하게도 사회적으로 약자만 귀신같이 찾아가 괴롭히네요. 마음 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 읽는 그대들은, 이 시기 무탈하게 견디시길 바랍니다. 인간이 아름 다운 건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 때문일 테니까요, 그러니 코로나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다들 모두 마스크 안에 용기라는 필터 장착하시고, 매일 같이 두 손에 엉겨 붙는 불행들은 손 세정제로 박박 지우며, 하루하루 잘 극복해 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저 또한 그럴 테니까요


이상입니다.  

2020, 가을 산만 언니 올림

* 창밖으로 보이는 수도원 풍경 is 제 마음입니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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