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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Oct 25. 2020

결국, 파산했다.

불행계의 트리플 크라운이군

최근에 한 정부기관에서 무료로 법률자문을 받았다. 십 년 전에 집안 일로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안았고, 그로 인한 부채 때문에 파산신청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기관 전문가와 상담 끝에 내린 결론이었으나, 여러 모로 힘든 결정이었다. 파산에 따른 물리적인 행정 절차도 절차지만, "파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패배감도 만만치는 않았다.


가뜩이나 마음도 이런데, 담당공무원의 태도 또한 생각보다 고압적이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집안에 경사가 있어 상담을 받았다면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상담받는 내내 그가 건네는 무성의한 답변, 곁눈질, 서류를 살피며 짤막하게 내쉬는 한 숨, 같은 데서 계속해서 마음을 다쳐야 했다.


이해한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나는 시민들의 혈세를 축내는, 아니 그 보다는 그냥 그렇고 그런 민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잘해줄 이유 없다. 게다가 이 일 끝나면 다시 볼 사람 아니니까, 딱히 내게 마음을 써야 할 이유 없는 거다. 그러니 나도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되는 거다. 그렇다. 머리는 안다. 머리는 늘 안다.


서류 준비는 쉽지 않았다. 세상에 법무사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딴에는 혼자 준비한다고 했지만, 노상 실수했다. 그러니 공무원은 내가 더 귀찮았을 거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형식적인 질문들 앞에서 평소답지 않게 나는 자꾸 눈물을 비죽비죽 흘렸다. 이 돈은 어디에 썼고, 그간 생활비는 어찌했는지, 그가 물으면 나는 있는 그대로 말만 하면 됐는데 번번이 목이 메어 말문이 막혔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 앉아 내 통장에 적힌 1원의 출처와 근거를 밝혀야 하는 게 보통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해서 끝내 나는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됐는지, 설명하다가는 대성통곡 했다. 그때도 그는 이런 일 한 두 번 아니라는 듯 무심한 얼굴로 책상 한 구석에 놓인 크리넥스 티슈를 건넸다.


그렇게 한 달이 좀 지났을까, 드디어 나는 그가 마련 해오라는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 갈 수 있었다. 속으로 마지막이다. 오늘만 잘 넘기면 된다. 더는 여기 안 와도 된다, 생각했다.


한데 그 결정적 순간에 내 서류를 검토한 국선 변호사가 뜻밖의 의견을 냈다. 근로 능력과, 여러 요인을 종합해 봤을 때 내 파산신청은 법원에서 기각될 소지가 높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담당 공무원은 나보다 훨씬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실 계속해서 그가 나를 약간 깔보는 듯한 태도로 대했을 때는 아마 내 파산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본인이 나를 구제해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거다. 만약 처음부터 내가 파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 어쩌면  "더운 날 먼 걸음 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제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라며 정중히 대했을지도 모르고


그는 여러 국선 변호사들과 상담전화를 마친 후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안경을 여러 차례 고쳐 쓰면서  "한 회사에서 이십 년 일하신 건 정말 대단하신 거고..." 같은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내 앞에 늘어놓았고, 나는 그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동안 내가 그에게 제출했던 자료들을 다시 주섬주섬 챙겼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 대목에서 한 바탕 난리 쳤을 거다. " 이제와 안 된다니, 당신 지금 사람 가지고 장난하느냐" 목청껏 소리치고 삿대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그날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글쎄 모르겠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니 화난다고 그때마다 속엣말을 다 하는 건, 화내는 순간만 후련하지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것과,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었다면 화내지 않고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그간 처음부터 내게 약간 불손한 태도를 보이던 이 젊은 친구를 끝까지 내가 인내할 수 있었던 건, 그를 통해 예전의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는 걸, 나 역시 어려서는 그랬으니까. 잘난 거 하나 없으면서도 잘난 맛에 취해 남들한테 걸핏하면 뭘 알고나 그러시라고 면박을 주곤 했으니까.  


해서 생각했다. 사과도 반성도 필요 없으니, 그냥 이 친구가 이번에 나를 통해서 뭔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예컨대 상담 초반에 자격 심사할 때 지금보다 더 꼼꼼히 한다던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 오는 사람들을 조금 더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바라본다면 남의 인생이란 게 한 순간 보이는 정보 몇 개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까지도.   


그렇다.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나 역시 별 수 없이 당하는 거다. 그러고 보면 우주 어딘가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전부 보기 좋게 되돌려 받을 수는 없을 테니까.


이번에 비록 파산은 못했지만, 크게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돈이야 또 벌면 된다. 빚이야 돈 생기는대로 갚으면 되겠지, 물론 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제1금융권에서 제3금융권으로 넘어가며 생긴 천문학적인 채권가액은 내 현실적인 변제능력과 원금을 감안해 변호사를 통해 조정해야겠지만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한데 하늘이 두쪽 나도 사람은 살아만 있으면 다 살아진다. 매일 밤 애달캐달 속 끓인다고 이자 1원 줄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오늘 밤은 열 시 넘어서 파 많이 썰어 넣은 라면 끓여 햇반 하나 말아먹고, 내일 아침 늦게까지 얼굴이 퉁퉁 붓도록 잘 생각이다.


그러면 또 혹시 모르지, 어디선가 내일 좋은 소식이 찾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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