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희극인, 故박지선의 부고를 전해 듣던 날,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을 잃은 것처럼, 내 속이 다 상했다. 트위터에서 보던 재기 발랄한 모습, 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본 그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사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미디어로 봐도 왠지 배려 깊고 따뜻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젊은 나이에 그리 허망하게 가다니,,,,, 가만히 있어도 입안이 썼다.
모진 결정을 하기까지 오죽하면 그랬을까,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창한 그 나이가 아깝기도 한, 양가적감정이 교차했다.
복잡한 머리를 비울 겸 이불을 박차고 나와 양치만 대충 하고, 추리닝에 크록스 바람으로 무작정 버스 타고 교보에 갔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렇게나 기계 문명이 발달한 세상에서, 인공지능이니 자율주행이니 입이 떡 벌어지는 최첨단 기계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어째서 사람 기분 하나 바꿔주는 기계 하나 안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 기계가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면, 다들 알아서 매일 아침 희망과 용기 비율 그때그때 잘 섞어 마시고 나오면 좋을 텐데, 그럼 이런 비극적인 뉴스 덜 보고 살아도 될 텐데.
서점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과, 임승유 시인의 시집을 샀다. 시집은 너무 좋아 아껴 읽고 있으나, 하루키의 신작 "고양이를 버리다"는 다 읽고 정말이지 분량이,,,,,,허탈했다.
아마 같은 분량으로 한국 작가가 출간했다면 당장 나무에게 사과하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올라왔을 거다. 정말 양심 없,,,,,
시집은 다르다. 명료하고 인상적인 시인의 말부터 벌써 좋다.
그래 인생은 생활이야, 생활이 돼야 창작이든 뭐든 할 수 있어. 암만. 생활이 먼저지
아래에 좋아하는 문장은 <야유회라는 시 중에서> 발췌했다.
"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지나갔고 그게 영동에서의 일인지 빛을 끌어모아 붉어진 사과의 일인지
이마를 문질러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따라갈 때는 어디 가는지 몰라도 됐는데 한 사람을 잃어버리고부터는 생각해야 했다. 이게 이마를 짚고 핑그르르도는 사과의 일이더라도"
이마를 짚고 핑그르르 도는 사과라니,,, 시인의 표현과 시선은 정말이지 닮고 싶다.
집에 와서는 좋아하는 미드를 봤다. 울적한 날에 나는 종종 '그레이 아나토미'를 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이들이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이 좋다.
얼마 전에는 함께 근무했던 친한 동료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다. 안 그래도 지난여름 마지막으로 봤을 때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그의 얼굴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해서 내가 왜 그러냐 물으니, 그가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하며 , 안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연말이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운영하는 사업체가 자꾸 적자가 나서라고 했다. 해서 내가 그럼 사업을 접어라, 변리사니까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면 취직할 데 많을 거 아니냐, 하니까 그가 손으로 회의실 바깥으로 난 창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사람들 다 내 식구다. 나 하나 믿고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이다. 이자리서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은 못한다" 했다.
현관까지 배웅하러 나온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언제 한 번 관악산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산에 한 번 가자, 날 한 번 잡자, 한 번 보자 하며 가을을 보냈고, 어영부영 겨울을 맞은 거 였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관악산에 함께 못 가 준 게 못내 걸린다. 내가 하루라도 그에게 시간을 투자해 속엣말을 다 들어줬으면 좀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설악산도 아니고 태백산도 아니고 관악산 그게 뭐라고 안 갔을까 싶기도 하고
다소 비겁한편인 나는 빈소에 가지 못했다.정말이지 그 슬픔을 직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자 이제는 마지막 가는 길에 꽃 한 송이 올리지 못한 게 또 여간 후회되는 게 아니다.
보기 드물게 좋은 사람이었는데, 윗사람한테 아부하지 않고, 아랫사람 하대하지 않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그러고보면 참 희한하지, 세상에 많고 많은 나쁜 놈들은 잘만 살아가는데, 사람을 떼로 죽여 놓고도, 속죄는 커녕, "몰랐다" "내 책임 아니다" "시절이 그랬다." "알고 보면 내가 피해자다." "진짜 억울한 건 나다."라는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잘들 살아가던데, 다들 뻔뻔하게 보란 듯이 잘만 살던데,
어째서 이렇게 사려 깊고 배려심 넘치는 착한 사람들은 자꾸만 세상을 서둘러 떠나가는가, 그 사실이 오늘은 몹시도, 서럽고, 야속하고,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