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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an 26. 2021

엄마 김치를 담그어야지

엄마 김치를 담그어야지! (1) 20201104

며 칠 동안  반찬이 필요 없다. 배추김치에 밥이면 충분하다. 몇 년 전부터 음식을 하시면서 맛이 이상하다고 하셨다.

항상 그대로였다고 느끼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끔씩 조금 짜던 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엄마 김치를 배우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도 벌써 한 3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지휘관 생활을 하면 퇴근은 정시에 할 수 있다는 착각이었다. 휴일엔 당직근무도 없으니 시간적으로는 충분할 것으로도  착각했다.

착각은 자유라 했던가?
대대장 때야 직. 간접 지휘가 섞여있어서 챙길게 많았다. 취사장은  상사 같은 중사, 탄약고는 보병 중사 등이  잘 관리해 주었다.

그래도  믿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새벽이나 휴일에 커피나 아이스크림 등을  챙겨서  확인을  포장했다.  일과 후에는 초급간부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병사들과 면담을 해야 했다. 이런저런 핑계도 많았다.

연대장이 되고서는 여유가 있을 듯했다. 대대장들이 알아서 그런 역할을 잘해 주었던 것이 든든했다. 연대본부는 열정 넘치는 작전과장과 주임원사가 있었다. 거의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새삼 느끼던 시기였다. 간부들  챙기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세상이 삼라만상이라는 말을 현장에서 실감했다.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 상관의 이성적 요구에 응하지 않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이, 대대장의 비인격적 처우와 공개적인 무시에 상처 받은 이도 있었다.

현역 복무 부적합  처리된 소위, 한강에 뛰어내린  젊은 이, 상을 받아야 함에도 감찰조사를 받던 억울한 이 등 보호하고 지켜야 할 누군가의 귀한 아들, 딸, 자랑스러운 아빠, 엄마가 있었다.

어떤 리더십 책에서 보았던 글 귀가 가슴에 와 닿던 시기였다.

'종업원은 수당 받으면서도 야근을 투덜거리고 오너는 아무런 조건 없이 24시간 일한다. '

엄마 김치 담그는 법!

제대로 배워야 할 시간이 모래시계처럼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  여느 중년의 고아들처럼 그 김치 맛을 잃고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걱정이다.

태어나 처음 맛 본 김치 맛! 영원할 것 같던 그 김치 맛! 엄마 김치 맛!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욕심일 것이다. 엄마가 해 주시는 아침저녁을 먹는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자식! 아들로서의 도리는 다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겠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엄마 김치를 담그어야지! (2) 20201104


언제나 말씀 없이 조용히 뚝딱 거리시면 나오는 줄 알았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엄마!'

그런 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날름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주어지는, 거저 주어지는 엄마의 김치였다. 마치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영원히 있을 것 같던  그 김치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났던 그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사관학교 가입교 생도 신분일 때가 소환된다. 엄마의 김치 맛이 그리도 그리웠다.

처음 먹어 본 느끼한 햄버거, 지금이야 '군대리아 버거'라고 별식이다. 그 생소한 맛은 이틀을 가지도 못했다. 국도 이상했다. 스프라는 것을 국으로 여기며 먹었다.

군인은 '각'이 있어야 한다며 강요되던 직각 식사는 그마저도 어렵게 했다. 숟가락 끝에서 줄줄 흐르는 수프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 같았다.

아침은 김치도, 국도 없이 억지로 먹었다. 점심, 저녁에는  깍두기, 고추와 소금에 절인 배추가 더욱 엄마를 그립게 했다. 재료는 똑같을 건데 뭐가 빠진듯했다. 엄마의 손맛은 분명히 빠졌다.

사람의 손에 무슨 맛이 있을까? 손 끝에 묻은 떼일까? 고추나 생강, 마늘이 매워 기침하다 빠진 침 때문일까? 그런 것은 맛과는 무관한 것이다.

엄마의 김치는 참 이상하다. 같은 재료로 똑같은 양을 넣어도 맛이 다르다.

엄마 김치를 담그어야지! (3)


엄마 김치는 맛있다. 어느 누구라도 감동받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나도 그렇다고 했다.

'작은엄마 김치가 생각나네.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고 그립네. 작은엄마의 음식 솜씨는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

엄마 손맛을 배워보겠다고 한 너의 생각이 엉뚱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나이가 들면 감각이 무뎌져서 간이 점점 짜지는 특성이 있는데 작은엄마도 나이가 드시나 보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그립고 그리운 게 엄마가 해준 음식인데 하물며 작은엄마의 김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으니 앞으로도 엄청 그리울 거야.
시간이 없으면 레시피라도 적어놓던지.'

가을밤은 깊어가고 낙엽은 뒹굴고 가슴이 허해진다. 이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오늘 하루 못 먹었다고 이렇게 감성적일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은 엄마다!  


엄마 김치를 담그어야지! (4)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이면 새로운 하루를 다시 맞는다. 가을 햇살을 한 가득 담은 거실은 평화롭다. 아마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조용한 음악이 감미롭다. 때 마침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들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노랗고 빨간 나뭇잎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눈과 귀가 호강에 겨워 영혼에게 사치를 준다.

아무 생각이 없다.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영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금세 적응이 되게 하나님이 만드셨나 보다.

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를 찾아 나선다. 가끔은 첨벙 거리는 물소리, 인기 척이 TV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노랫소리와 섞여 들어온다.

엄마가 무엇인가 하고 계시는 듯했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계셨다. 오전에 장에 가서 사 오신 싱싱한 네 포기를 반으로 갈라 8개가 있었다.

영상 촬영을 하니 설명을 해 주신다.

'짭짤한 소금물에 담그고 숨이 많은 곳은 소금을 많이, 적은 곳은 조금만 뿌려야 돼요.'

직접 해 보는데 또 말씀하신다.

'여기는 빡빡하니까 잘 안 들어가요. 그래서 많이 얹어야 해요,  거긴 듬성듬성하니까 잘 들어가. 조금만 놓으면 돼요'

몇 년 동안 배운다면서 미루고 또 미루다 이제야 직접 눈여겨본다. 찹쌀죽, 생강, 파, 새우젓, 까나리 액, 무채 등을 적당히 버무렸다. 그리고 보니 빠진 게 또 있다. 멸치와 다시마를 섞어서 끓여 넣으셨다. 하나하나 왜 넣는지 설명해 주신다.

TV에 나오는 요리 전문가 억양도 묻어 나오신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듣던 수학 문제 설명보다 어렵다. 수학 문제는 혼자 풀려면 어렵기는 해도 들을 때는 이해가 되었다. 근데 이것은 들으면서도 어렵다. 혼자 하려면 며칠은 준비해야 할 듯하다.

다음에는 직접 시켜보라 말씀드렸다. 세상 일을 대하는 근자감으로 두 번째라면 서러웠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도 안 했는데 주저부터 한다.

차라리 죽을 때까지 엄마가 살아계시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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