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as Feb 06. 2021

눈 오는 날의 회상

군대 눈 청소 제설작전


눈 오는 날의 회상


올 겨울에는 눈이 없었다. 그 눈 많다던 동해안에서도 작년 12월까지는 못 보았고 올해 여기 와서도 그랬다. 아무리 기후 온난화가 일상화되었다지만 눈 없는 겨울은 아직은 아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며 조금씩 눈 비슷한 것들이 날리기도 하더니 일요일 밤에는 가로등 불빛을 희미하게 할 정도로 내렸다.


여기서야 폭설이 되었건 폭우가 되었건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다. 그저 내 몸하나 잘 간수하면 될 뿐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니 늘 따라다니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이 주는 하얀 아름다운 자유를 느끼고 있는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눈만 오면 마구 뛰는 강아지의 마음을 오랜만에 찾았다.


이런 날 야전부대에 있었더라면 눈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바빠졌을 것이다. 기상 예보부터 정확하게 확인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얼마나 내린 후 얼 것인지 말 것인지 기온 변화도 확인해야 되었다.


군복 입은 사람들에게 특이한 기상예보는 바빠지게 하는 신호이다. 당장 내일 교육훈련 계획부터 조정한다.


평소 화재 우려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던 조명탄, 신호탄, 신호킷, 예광탄 등 활성교탄과 교보재를 사용할 계획을 수립하고, 상급부대에 보고해서 승인받고 준비도 한다.


퇴근시간과 겹치면 빙판길 안전운행에 대한 강조사항도 전파한다. 이후 예상 적설량과 기온, 다음 날 부대 운영, 상급 부대 지침 등을 고려해 우리 부대에 맞는 대응방안이 정리되면 말과 행동으로 조치를 한다.


야간 경계근무 투입 간에 미끄러져 다치지 않게 빗자루를 지참시켜 쓸면서 이동하게 제설도구 등을 준비시킨다. 아침 출근 시 빙판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영외에 거주하는 간부들에게 안전운전 전파사항을 검토한다.


우발상황에 대비해 비상연락망까지 검증하면 어느 정도 지침을 주는 것은 끝나고 결과보고만 기다리면 된다.


그 시간은 현장 확인과 병행한다. 실외에 있는 각종 시설, 적사장, 제설도구, 야간 근무자 복장 등 실제 하달한 지침이 얼마나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1%의 지시와 99%의 확인이라 했던가?


기온 급강하 예보까지 있으면 주둔지 내의 필수 활동 공간, 식당가는 길, 외곽 경계초소 투입도 등에 눈이 쌓여 얼지 않게 야간 제설 조를 편성해 취침 전에 알려줘야 한다. 눈 온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기 시작한다. 날은 어두워지며 바람은 더 차가워진다.


눈 오기 전 밤하늘은 평소보다 그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흰색과 조화를 이루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어둠과 흰색만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야간 경계근무자 외에도 누군가는 밤새 염화칼슘도 뿌리고 눈도 쓸고 또 쌓여있는 눈을 치우고 또 치워야 한다.


그러면서 아침이 되면 간부들이 하나 둘 출근해 보이기 시작한다. 몇몇은 아직도 눈 오는 밤의 추억에서 잠이 덜 깨인 듯 보이기도 한다. 간혹 그들 눈 속에는 가로등 불빛을 스치며 소복이 내리던 눈,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기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날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면 눈을 떠나 얼굴 표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출근길 도로는 교통경찰의 붉게 번쩍이는 경광봉과 야광 조끼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당직근무자 지휘 하에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붐비는 모습의 형체들이다.


온통 하얗게 덮여 있는 설경과 조화가 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출근 후 날이 밝아지면 밤샌 병사들의 수고로 초소, 순찰로, 도로, 식당가는 길 등 필수 공간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동시에 그 주변 하얀 천사의 얼굴도 보인다.


하나님의 똥!


밤샌 제설작전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남아있는 그들의 이름! 이들의 전초부대와 싸우던 이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찬바람과 연합해 청춘의 열기를 빼앗고 승리한 그들은 이제 불리해지자 백색 위장과 추억이라는 심리전까지 병행하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세상에 남으려 한다. 그들은 연병장, 도로, 탄약고 등 곳곳에 남아 먼저 녹아 사라진 전우의 시체,  또 다른 전우인 땅에 얼어붙어 강력한 저항 진 지를 만들려고까지 한다.


이쯤 되면 순차적으로 투입되던 야간전투개념에서 벗어나 전부대원이 집중하는 전투현장으로 바뀐다. 지휘체계가 갖추어지고 솔선수범으로 무장한 초급지휘자들의 독려가 시작한다.


따뜻하게 푹 쉬다 와서인지 그 전투력이 대단하다. 기운이 넘치는 듯 보이기도 하다. 하얀 눈 탓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하얀 눈은 그대로이다.

잠시 그 시절 모습이 여유로움과 대비되면서 하루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군인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