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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Feb 07. 2021

사람은 빈틈이 있어야

사람 빈틈 여유


사람은 빈틈이 있어야


논산에서의 학생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국내 최고의 교육과정인 국방대 안보과정 11개월  중 선수과정이라 부르는 현역들만의 시간, 약 4주간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서로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 행동하나 말투 하나까지 신경을 쓰는 분위기였다. 육해공군 대령 진급 예정자와 대령, 해군 준장 한 명, 공군 준장 진급 예정자 한 명 등 총 75명이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는 관록이 있어 보이는 전문가처럼 보였고 몇몇은 적당히 나온 배와 희끗희끗한 머리, 좀 넓어 보이는 이마가 경륜을 살짝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대부분이 초면이니 낯선 상대에게 선뜻 다가서기를 주저하며 빈틈을 보일까 애써 조심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럼에도 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어야 인간적이고 편해지는 관계가 되는 것을 다들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사회에서 익히 체득한 첫인상의 중요성과 몸에 밴 조심성은 편한 수평관계에서도 사그라들지 않고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군 생활 기간은 상급자, 동료, 하급자 사이의 관계의 연속이었다. 동료들은 편했으나 상하급자에게는 허점을 보이지 않고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 한 적도 있었다.


상급자는 계급이 높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하급자, 부하들은 상명하복의 지휘체계를 유지해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리더나 공직자는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다'


사관학교 입학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말이다. 부하들이 다들 지켜보고 있으니 매사 빈틈을 보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누군가의 사고에 세뇌되었던 적이 있었다.


자기 생각 없이 정확한 뜻도 모르고 실천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 지휘관 중대장 때까지 그랬다. 지금도 그 습성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음을 가끔 자각하기도 하지만....


매일 사무실 청소와 정리를 해주던 통신병이 전역을 하게 되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사회 나가면 넌 분명 성공할 거야! 한 잔 받아라!'


'감사합니다!'


'지난 연대 전술훈련평가 때 그 비를 맞으며 혼자 텐트도 잘 치고, 무전기가 안되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지시도 전달하고,  중대장실도 언제나 깔끔히 치워주고... 고맙다.'


'한 잔 더 받아!'


'아, 네! 근데 중대장님?'


'어, 뭔데! 말해!

이제 내일이면 제대인데 못할 게 뭐 있냐? 평소에도 다했잖아? 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을 것 같다. 그도 그리 느꼈는지 담보를 달라한다.


'중대장님! 먼저 화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어쭈~~, 이제 예비역 된다고, 내일 2400까지는 현역인 거 알지? 농담이고, 그래, 인마! 뭔 남자가 미적거리냐? 내가 그리 쪼잖아 보이냐?'


그런데 진짜 그렇게 보였었나 보다.

'저~~, 중대장님 모시느라 힘들었습니다. 빈틈이 안보이셔서...'


'야! 내처럼 엉성한 장교에게 빈틈이 없다니...'

사실 이 말은 평소 부하들 교육용 멘트였다.


'나처럼 빈틈 많은 장교에게 허점 보이는 건 잘못된 거다. 그러니 똑바로 해라! 뭐 그런 식었다.


그는 약간은 주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퇴근하고 나면, 점호 전 청소 시간에 중대장실을 나름 정성 들여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짜증 섞인 말투로 '누구 왔다 갔냐? 펜이 삐뚤삐뚤하게 놓여잖아, 걸레 가져와라, 책상을 닦아도 제대로 해야지! 쓰레기통은 비워지기 위해 있는 것이다. 등등'


그러고 나면 다른 간부들, 선임병들이 중대의 하루 분위기를 망치게 했다며 핀잔과 면박,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일명, '뒷다마, 쿠션'을 돌린 것이고 이런 분위기를 알면서 그러는 것 같아 스트레스가 더 컸다고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인 동시에 오해도 있었고 반성할 것도 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인가? 필통에 가지런하게 깎아 놓은 연필과 딱 맞추어 놓은 지우개, 노트 필기를 보신 선생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정리를 잘하니!'라며 칭찬하신 기억이 떠 올랐다.


중대장 때도 책상 위 검정, 파란, 빨간 플러스펜의 모나미 글자를 맞추고 연필 상표, 지우개를 반듯하게 정렬한 후 퇴근을 했었다. 책상 위 유리는 얼룩이 있거나 정리가 안되면 불편했었다. 이런 걸 똑 같이 요구했으니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달아 오름이 느껴졌다. 체질적으로 술 한 잔이라도 마시면 얼굴이 빨개 지는 게 다행이라 느꼈던 첫 기억이었다.


청소, 정리해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자신이 직접 하지 않는다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괴롭히기까지...


그 이후로 정리에 대한 눈높이를 좀 낮추고 어수선한 주변 환경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좀 참고 넘어가려 노력했다. 타고난 성질이 그러해서인지 잘되지 않을 때는 일부러라도 좀 어지럽히려고도 했다.


사람이 너무 깔끔하거나 빈틈이 없으면 주변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빈틈없는 사람, 깐깐한 사람은 피곤하다. 특히 그 아랫사람에게는 더할 것이다.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기는 법!


이제 스스로 엉성해지려 하고 나만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어떻게 기억했는지 알 수 없지만 먼저 인사와 함께 잠시 스친 일을 말하며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그저 잘 웃고 대화가 즐거운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일까? 남루하지 않는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인생의 한 목표는 이루는 셈이 된다.


오래전, 20대 초반이었던가? 40대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정한 것이 있다.


미래의 자화상!


멀리서 보면 근접하기 어려운 위풍이 있으나 가까이할수록 향과 함께 혜학과 통찰이 있는 사람!


즉,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거기에 더해 빈틈과 부족함도 있어야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채워주려고도 할 것이다.


사람을 끌게 하는 것은 완벽함, 철두철미함 같은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약간의 빈틈이 있어야 인간의 향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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