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귀찮은 이사
사람이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쉬운 표현으로 좋은 것인가? 아닌가?
이러한 뜻을 가진 많은 단어들이 있다.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긴다는 이사, 일이나 유람, 휴식 등을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는 여행,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거나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소풍,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관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이사를 제외하고는 다들 설렘을 주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사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기존보다 더 좋은 환경이나 여건이 갖추어진 곳으로 옮기는 일은 기대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감성을 통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프레임, 스펙트럼을 통한 감정의 시각화로 표현하면 너무 건조한 것일까?
그보다 더 드라이한 말은 전속!
소속부대가 변경된다는 뜻이다. 대개의 경우는 부대가 바뀌면 주둔지도 따라서 옮겨지고 생활권 자체도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 명령이 발령되면 그다음부터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들의 연속이다.
먼저 깔끔하게 떠나야 한다. 대한민국 화장실 어디 가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말은 떠나는 사람에게 너무나 관대한 표현인 것 같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지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면 후한이 따른다.
전쟁에서 군인에게는 죽음이다. 전장정리가 안되면 적이 그 흔적을 추적하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조직은 전쟁을 준비해서 그런지 특히 그러하다. 만약 그것이 비밀자료나 금전 관련 사항이라면 치명적이다.
인수인계서에 후임이 서명을 하면 책임은 어느 정도 면해질 수 있으나 완벽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안에 따라 징계 관련 공문이 추적 레이더를 달고 자신을 따라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추가해서 각종 편의 복지시설 등의 사용료, 숙소 관리비, 공과금(전기, 상하수도, 가스) 등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외형상 드러나는 것들이지만 마지막 흔적은 평판이랄까?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며 새로운 부임지에도 전령처럼 먼저 와 기다리는 특성이 있다.
머물던 곳을 떠날 때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남을지 두려워해야 함을 늘 경계하며 되새겨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면 명령에 근거해서 새로운 부대 인사부서에 신고일자, 숙소 등을 문의하면 된다. 부대 내에서의 일이야 규정대로 하게 되어 있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이삿짐센터도 알아봐야지, 주민등록 이전도 해야지, 각종 리스, 렌털 가전제품 주소 이전, 가스 연결 신고, 부대 출입 서류 제출, 그동안 못 간 병원도 가야지...
참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빨리할수록 좋다. 이삿짐은 왜 이리 많은지 짐이 많으니 이사 화물비도 많이 나온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여기저기 알아봐야 한다. 다음 출근일이 정해진 후에는 손 없는 날, 있는 날 가릴 틈이 없다.
연말, 집중적인 보직 교체 시기에는 1~2달을 기다리는 것은 흔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 좋게 숙소가 이른 날짜에 정해지면 행운이다. 숙소 배정을 받고 나면 이사 일자를 확인한 후 업체와 계약을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 깎으려는 자와 더 받으려는 자의 기싸움!
최근 이사한 동료들이 소개해 주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저렴하면서 잘 정리해 주는 곳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사화물비가 일부 지원되지만 100% 충족은 안되니...
배정되는 집이 넓고 새집이면 좋다. 이런 곳의 분리수거장은 많은 전입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한산하다.
반면 오래되고 좁은 아파트들이 모인 곳은 쓸만한 가구, 집기류 등이 재활용품으로 많이 쌓인다. '그동안 손때 묻어 정들었던 것들을 버려야 할 때 마음이 어땠을까?'
반면 이번에 배정된 아파트는 새것이어서 그런지 역시나 넓고 쾌적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거 가족이 많으면 큰 집을 주는 것이다. 부모님, 아내, 아이들 덕에 가장 넓은 38평짜리를 배정받았다. 수납공간도 나름 여유가 있어 가구, 옷, 신발 등과 잡동사니 정리도 수훨하다.
그러나 세상 일에는 양면이 있는 것처럼 부대시설과 숙소를 제외한 편의시설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버스는 하루에 서너 번 오는 등 대중교통은 전형적인 시골 시스템이다. 주변 여건 때문인지 아파트 관리 직원들도 컨츄리 한 느낌이다.
'이삿짐 들어오니 ㅇ동 ㅇㅇㅇ호 비밀번호 알려주세요'
'입주 안돼고요, 사무실 와서 신청서 등 작성하고 배정받은 후 시설물 점검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데요, 입주가 안됩니다'
사무실로 찾아가니 떨떠름한 표정으로만 맞는다.
'배정이 되었으니 들어갈 집에 이사 오는 거고 입주자가 시설물 점검을 받는 게 아니라 관리 책임이 있는 곳에서 열쇠도 주고 각종 보안시스템도 설명해 주고 수리할 게 있는지 확인해야죠!'
'....'
아파트 인수인계서만 가져와 싸인만 하라 한다. 알아서 체크한 후 책임만 지라는 것이다.
'전에 살던 사람 퇴거 때 체크한 리스트를 줘 보세요. 비교하며 확인할게요!'
놀란다. 하기야 자기도 본 적이 없는 걸 가져오라 하니...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초보 관리인에게 군 생활 31년째, 사관학교 50개월간 10번의 관물 이동, 기혼 이사 또는 독신 이사를 1년에 한 번 꼴로 한 사람인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따지고 보면 돈과 기분 때문이다. 올해 딸아이 대학 등록금 내고 기숙비 등 준비하려면 한 푼이 부족하니...
또한 나중에 다시 이사 나갈 때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전에 살던 사람이 망가뜨린 것까지 변상할 수도 있다. 들어올 때 꼼꼼히 챙겨야 하는 이유이다. 아파트에 못 하나 잘못 박으면 벌금 5천 원이니...
이사도 잘했는데 매일 쓰던 모자가 안 보인다. 전에 이사 때부터 풀지 않은 박스도 있는데... 짐에 쌓였는지? 이삿짐 아저씨들이 챙겼는지... 언제인가는 나오겠지 하며 포기한다.
여유될 때 풀어보지 못한 박스들을 열어보면 되고 혹 한참 후에 발견하면 횡재가 될 수도 있다고 자위도 해본다.
참, 피곤하다.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어디가 되었건 피곤하다. 언제나 떠돌이 삶 안 하고 좀 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