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봄, 춘래불사춘
마음의 봄, 춘래불사춘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20.9.1, 출간) 중
흐린 토요일 오후, 요사이 늦잠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짧기만 하다. 뭐 하루의 길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지는 않겠지만 눈 뜨고 있는 시간 중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대신해서 밤에 눈 뜨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게 그거라고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학교 숙제를 하느라 눈뜬 낮 시간은 집 안에만 있다가 저녁에 딱 한번 집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트랙을 열심히 걷는 이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열심히 걷고 있었다. 마스크, 두꺼운 모자, 장갑, 겨울 패딩 등 아직도 겨울의 흔적을 잔뜩 걸치고 있었다. 춘래 불사촌인가? 봄이 왔는지 아직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있던 동해안에서는 시간만 나면 바다로 나갔다. 좌우, 앞으로 확 트인 그곳에 가면 닫혀 있던 가슴도 무엇인가로부터 활짝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도 계절의 변화 없이 늘 그대인 것들이 많았다.
파도와 백사장의 모레,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나르는 갈매기들, 얼굴에 부딪혀 오는 짠내음 등은 계절과 무관하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경치를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한다면 등 뒤로는 사계절 언제나 푸른색의 해송이 병풍처러럼 있는 곳이다. 언뜻 본 눈으로는 계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봄은 누구에게나 희망과 생기를 주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가에는 아직도 누런 잔디와 앙상한 나뭇가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뿐이다. 산책길에 눈을 씻고 나무니 화초니 하는 것들을 허리를 굽히고 고개 숙여 자세히 보아야 간혹 푸른 싹이 보일 뿐이다.
좀 더 생기를 느끼고 싶어 졌다. 아직은 이르지만 분명 대지를 적시는 이른 봄비도 왔고 도로가에 황량했던 논이나 밭에서도 이랑과 고랑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뒤집힌 흙도 조금이나마 물기를 먹은 채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탑정호라는 저수지랄까 작은 호수라 할까 물을 담아 놓은 곳을 찾았다. 아직은 산등선은 흑갈색과 중간중간 소나무만 보일 뿐이었다. 호수 주변에 도착하니 맞아 주는 건 바짝 마른 갈대, 생기 없는 줄기에서 불쌍 사납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들 뿐이었다. 아직은 이른 듯했다.
물 위로 자연스레 놓인 산책로를 걷다 보니 지나 온 반대편에 푸른 기운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발걸음을 돌려 가까이 가보니 아주 조그맣게 가지 끝에서 싹들이 움을 튀우고 있었다. 그 작은 줄기는 물기를 약간 먹은 듯한 것이 싹이 없는 것과 비교되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보니 크고 작은 나무들도 비교가 되었다. 물이 올라온 것, 오르는 것, 오르기 시작하는 것, 아직 좀 더 기다리고 있는 것들 다양도 했다.
봄은 벌써 와 있었던 것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 운 것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른 잎들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난해 푸르름의 흔적도 거의 사라진 것이다.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헷갈리게 내리 던 것들도 없다. 길가에 일 년생 잡초들 밑으로는 파릇파릇한 아주 작은 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대충 보고 쉽게 평할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입고 나온 옷도 가벼워졌다. 두꺼운 것들은 몸에서 사라지고 한 참을 걸어도 춥지 않다. 지난겨울과 비교해 보면 이미 봄은 온 것이다. 성격 급한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에서는 마치 골리기라도 하듯이 나무줄기, 가지에는 물오름을 보여준다. 그 끝마다 푸르스름한 싹을 움트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봄의 전령은 제비나 개나리, 매화, 산수유 꽃이 아닌가 보다. 쑥·달래·냉이 등의 새싹도 아닌 것 같다. 산너머 남쪽 나라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제 발로 걸어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이 겨울에 머물러 있으면 추울 것이고 삭막한 산과 들만 보일 것이다. 그 아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생명의 물오름, 그 봄의 전령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가 보다!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20.9.1, 출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