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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Oct 13. 2022

첫사랑

나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이야기


나의 첫사랑 이야기 20200712


사랑없이 사는 것은 그져 숨만 쉬며 생존하는 것이다. 메마르고 굳어버린 감정은 가뭄에 갈라진 거북이 등 같은 논이라 할까?


이런 아픔에 비는 안오고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겼다. 아는 동생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다. '힘들게 살아 온 50년 중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뭐 좋은 일이 있나 싶었지만 쫓기는 일상때문에 궁금함을 묻지 않고  '좋겠네'라는 간단한 답만을 했다.


다음 날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밝은 목소리로 영상 전화가 왔다. '갑자기 뭔 영상이야?'하는 약간 짜증나는 마음으로 받아보니 한 여성과 함께 보였다. 그의 첫사랑을 만난 것이라고 한다. 며칠 후에는 안하던 짓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 ㅇㅇ을 만난지도 한 달이 되어 간다. 평생 가슴 속에 있었던 여자, 3일 전에 보고 오늘 또 만나러 가는데도 설레는 마음은 희한하다.


나이 50을 바라 보면서 순대, 떡볶이, 김밥을 먹는 모습도 예쁘다. 아니 하는 짓이 다 예쁘다.


얼굴을 만지고 안아도 보고 손을 잡아도 가슴이 뛴다. 이 나이에는 말투나 행동을 보면 다보인다. 사랑이 내만 아프게 하면 되는데...  내 사랑하는 ㅇㅇ이도 아파 보인다. 내 사랑이 아프면 안되는데 걱정이다.


우리 사랑은 슬픈 사랑인 것 같다. 인터넷 찾아봐도 이런 사랑 못 본 것 같다. 내 눈에는 정말 20대 보다 이뻐 보인다. 비싼 옷도 아닌데 뭘 입어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나를 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고 해 줄게 없어서 미안하네.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히 사랑할거다. 아프지 말고 세상이 힘들게 해도 널 지켜주고 내 남은 인생 널 위해 살거다.'


이런 글도 보냈다. 아마도 일기 형식으로 혼자 메모했던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통화해보니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고 싶더란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할 수는 없고 해서 내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 메말라 보이던 영혼이 이런 감성도 있었나 깜짝 놀랐다. 누구라도 첫 사랑 앞에서는 세월을 거꾸로 먹는 듯하다. 심지어 50대 중년마저도 20대로 되돌리는 마술을 부리기도 하는 것 같다.


'혹시 만나고 나서 배, 가슴, 머리 중 어디가 아프더냐?'라고 물으니 '그런 거 없고 좋기만 하다.' 고 한다.


부럽다. 그 부러움이 비가 올 때면 더 진해진다. 마치 갈라진 논바닥에 비가 오듯이 남의 첫사랑 이야기에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첫사랑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실 많이 보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바쁘게 살아 왔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보고 싶다. 살아있는지 궁금하다.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 등 온갖 SNS를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름, 그 모습만은 뇌리에 뚜렷하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던 때도 있었다. 그 때는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그리워하는지!


기억 속의 그 아이는 요즘들어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하게 자주 나타난다. 살아 있다면 그 아이도 오십대이다.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결혼을 했다면 누군가의 아내, 다 커버린 젊은이의 엄마일 것이다. 서로 다른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면 어떨까? 그녀도 나와 같을까?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만남에 대한 갈증도 더해 간다.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끔 그 아이와 오버랲된다. 우리가 서울, 부산으로 떨어져 아파할 때도 1학년이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 꽉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힘이 되어 준 것도 그 아이가 1학년 때였다.


그때는 그 아이와의 추억과 미래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넘기었다. 그 때는 오늘이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선배로부터 얼차려를 받거나 힘든 군사훈련, 체력단련으로 힘들 때도 그 아이와의 설레이던 추억을 되새기고 다시 만날 날까지 며칠 남았는지, 만나서 무엇을 할건지를 생각하며 버텨냈다.


대학 입학 학력고사를 보고 둘 다 합격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침식사 후 만나서 밤늦게까지 같이했다. 조조 영화를 보기도 했고 겨울 백사장을 걸으며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도 쳤다.


용두산 공원 탑 아래서 손가락을 걸며 사랑을 약속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같이 쓰려고 가져갔던 것을 숨기기도 했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비를 안맞게 한다는 핑계로 겉옷을 벗어 감싸며 안아 보기도 했다.


88년 크리스마스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특별한 날이니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며 따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들어가려는 것을 잡아 아직 귀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이야기 좀 하자며 계단으로 가서 첫 키스를 했다. 깜짝 놀라 주저 앉아버린 그녀를 겨우 일으켜 세우며 느꼈던 놀란 두 가슴의 쿵쿵거림이 아직도 선명하다.


서울ㅡ부산이라는 물리적 거리는 우리를 더욱 애타게 했던 것 같다. 오고가는 수많은 손편지들은 꼭꼭 눌러쓴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차 있었다.


친구들과 그 흔한 미팅을 한번도 하지 않고 바닷가에 놀러 가서도 '파도를 보며 너를 떠올리고 수평선 맞닿은 곳이 마치 우리 둘을 갈라 놓은 선처럼 보였어'라는 부분을 읽을 땐 미안하고 슬프기 그지 없었다.


외박이나 휴가를 받아 부산에 갈 때면 부산역, 김해 공항에서 처음 맞아 주고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것을 단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만날 때는 환한 웃음으로, 헤어질 때는 그 큰 눈 가득 눈물이 글썽이며 한 가득 고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안아 주고 싶었지만 학교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참 어리섞었다.


언제인가는 역에서는 나오는데 그 아이와 똑 닮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순간 걸음을 주춤하고 멈추었다. 뒷쪽에서 따라 오던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아이의 딸일까?' 스쳐 지나 돌아서서 뒷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녀는 아니지만 혹 그 딸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부산에 갈 때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웃기도 하고 허망한 기대도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결과야 언제나 똑같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그 시절로 돌아 간 듯 한 기분이 든다.


첫사랑이란 참 알 수없는 말이다. 단어 자체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애절하다. 그 아이와의 많은 부분이 지금은 비록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또 어떨 때는 그 아이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렘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아이가 되었건 그 설레임이 되었건 살아서 한 번은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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