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as Apr 25. 2023

기다림 웨이팅

수필?



기다림 1   

시인은 노래했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시인은 모든 죽어 가는 것! 즉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한 생명이 없는 것들, 하늘, 바람, 별들은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의 원래 제목이 시집의 전체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주장도 있다.

“원래 원고에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시)’라는 제목 뒤에 이 시가 이어진다”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시집 전체의 제목이면서 시의 제목”이라는 것이다. 사실 서시라는 제목은 출판사에서 붙인 것이라 한다.

그가 말한 죽어 가는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일 것이다. 안치환이란 가수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곡을 유행시키기도 해 시보다는 노래가 더 유명하지만 본래 이 곡은 시이다. 시인이 가수에게 노래를 만들어 달라해서 곡으로 탄생한 것이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단 한 번일지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사람이 왜 아름다운지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사랑하고 정들고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름답다는 말이다. 살아서 마지막까지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대게 몇 가지로 그 답은 압축된다.

첫째, '태어났으니까 그저 살아간다'
이런 답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체험’ 같이 살아간다. '인생체험' 바로 그것이다. 무슨 깨우침, 깨달음 같은 것도 없고 그저 태어났으니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할 수 있는 모든 체험을 한다. 이런 체험 같은 삶은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같은 체험이라도 다른 느낌이 있다.
숨을 쉬고 있지만 왜 쉬어야 하는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간다. 이런 사람은 무의미한 체험을 자발적으로는 멈추지 않는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삶은 생존 본능만 남아 있다고 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죽지 않으니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상태인 것이다.

둘째, 호기심은 내일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을 줌과 동시에 극히 이기적인 성취를 준다. 늙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지적 호기심, 성적 호기심, 사람에 대한 호기심 등... 이런 사람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 비약일까?

알고 싶어요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사랑에 빠진 여성의 마음, 사랑하는 이에 대한 호기심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닌가 싶다.
이 가사와 비슷한 한 시가 있다. 소설 '토정비결'의 작가 이재운이 1995년 주간조선에 연재한 '청사홍사'에 실은 것이다. 황진이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 '소세양'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기 위해 양인자 씨의 허락을 받고  '알고 싶어요'를 한시로 번역한 것이란다.

소요월야(蕭寥月夜)                   황진이(黃眞伊)

簫寥月夜思何事   소요월야사하사
소슬한 달밤에 그대 무슨 생각하시오는지

寢宵轉轉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뒤채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問君有時錄妾言   문군유시녹망언
님이시여, 제가 드린 말씀도 기억하시는지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까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멀리 계신 님 생각은 끝없어도 모자란 듯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하루 이 몸을 그리워하시나요

忙中要顧煩惑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생각해도 그리움일까, 괴로움일까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제가)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이 시를 한역한 것이나 '알고 싶어요'를 작사한 분!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마치 여고생의 순수한 첫사랑이 여기저기 이쁘고 애절하게 묻어 있는 듯하다. 사랑에서 출발한 호기심! 그 궁금함에 대한 기다림은 어떨까?

셋째,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서 책임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그 결과로 받는 제재'라 정의되며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 등이 있다고 한다. 어떠한 형태이든 책임은 부담스럽다. 어찌 보면 사람을 불쌍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다. 가족, 조직, 사회, 국가 등에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도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 내어야 하고 이루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철학적으로 책임은 '자신이 행사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이에 대한 마음을 "책임감"이라고 한다. 또한 여기에는 스스로의 행위에서 기인해서 반드시 결과가 따르고 여기에서 책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책임에는 적용될 수 있겠다. 본인들의 행위로 자식이 태어났으니 어찌 보면 딱 맞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 대한 책임 등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책임은 개인의 자유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책임! 그 결과의 끝은 어디인가? 시간이라는 흐름에 삶을 의탁하여 오늘을 인내하고 그저 그 끝을 향해 찾아가는 기다림이라 생각된다.
책임이 끝나는 그날을 향한 기다림!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왜 사냐는 물음에 답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답에 맞게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인 듯하다.

살아가는 과정, 인생에서 기다림이 없다면 어떨까? 그냥 살아 있으니 사는 인생체험, 책임질 일도 궁금할 것도 없는 삶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모르며 무관심하게 그냥 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기다릴 것이 없는 인생은 아름다울까?

작가의 이전글 오월의 바닷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