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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pr 30. 2023

부모님과 함께하는 쇼핑 ? 장보기?

부모님과 함께하는 쇼핑




나른한 주말 오후,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전기렌지인가? 국같은 거 끓이는 것이 잘 안된다'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강원도 양양까지 아들 밥 챙겨 주신다고 오신 그런 분들이니 아침 저녁으로 국을 데우고 찌게를 데우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고장 나니 좀 급하신 모양이다.

속초에 이런 전자제품을 파는 마트들이 있으니 그냥 가셔서 사시면 될 것을 굳이 같이 가기를 원하신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루 종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시다보니 아마도 가끔 오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아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는 것이 훨씬 시간도 줄일 수 있고 편하니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그러고 보니 오랫만에 여유가 생겼고 두 분과 함께 쇼핑한 적도 오래 된 것같다. 매일 출근때처럼 가방에 책 한 권 넣고 돋보기 안경을 머리 뒤로 걸치고는 먼저 나와 아직 늦더위로 더워진 차에 에어컨을 켜 시원하게 만든 후 함께 출발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는 길에 혼자서 어디론가 걸어 나가는 젊은이들을 보시며 '쉬는 날 혼자 밥 사먹으러 나가는 모양이다. 여기와서 보니 너도 저렇게 햏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안좋더라'며 같이 와 식사를 챙기길 잘했다고 말씀하신다.

한 참 점심 시간인데도 오가는 차량은 휴가철 이전처럼 여유로웠다. 불가 며칠전까지 평일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차와 피서지에 어울리는 간편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붂적였는데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한적했다.

7번 도로를 따라 가는 동안 출발 전 시골 큰어머니 전화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증조할아버지 묘 주변에 시청에서 용역을 준 회사에서 콘크리트로 뭔가를 한 모양이고 일년에 두 번하는 벌초에도 불구하고 대나무가 많이 자랐다는 등....

할아버지는 열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 가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도 하셨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그렇고 그런 이야기, 현재의 나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 옛날 일인데도 언제부터인가 귀에 잘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오남매셨는데 위로 형 두 분은 만주로 가셨고 시집간 큰누나 시댁에서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사셨다고 한다. 20대 전후의 누나가 시집살이를 하며 주는 눈치밥을 먹었을 어린 나이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니 TV속에서만 보던 그런 어린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했을까? 또 그 시집살이 하던 누나와 어린 두 남매는 부둥켜 안고 소리도 못내고 울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지천명의 장성한 아들 끼니를 걱정하시는 건강한 부모님과 지금 이처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볼 때마다 용돈 주시고 재미있는 이야기 잘 해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부자셨잖아요?' '그래 자수성가 하셨고 고생 많이 하셨을 거야. 어려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부모없이 자라 자리를 잡으려면 많이 힘드셨을거야'라고  하셨다.

여하간 그러면서 아버지 고모가 잘해 주셨고 그 사촌들이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동네 친구들이 못괴롭히게 하셨다는 등 옛일을 회상하셨다.

비가 오면 집에서 비를 피하다 가거나 자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하신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냐고 여쭈었더니 연락이 끊겼고 다시 연락하실 생각도 없으신 듯 말씀 하신다. 친척도 계속 왕래가 있어야지 이제는 남이나 마찬가지라 하신다. 하기야 먹고 살기 힘든 세성살이를 하다보니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두 분이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고르시는 동안 근처 아바이 마을에 가서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했다. 청초호로부터 나가는 배들 구경도 하고 설악산에 걸쳐 있는 구름에 가렸다 보였다 하는 지는 해의 아쉬운 빛을 보며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분들께 안부 전화도 하다보니 시간은 꽤 지났나 보다. 물건을 고르셨다고 전화를 주셨다.

그냥 사시면 될 것을 아들 카드를 쓰실  때는 항상 연락을 하신다. 좀 그러지 말고 편하게 필요한 거 사시고 맛난 것도 사 드시라 하는데도 안그러신다. '니가 스트레스 받으며 밤 잠 못자고 고생하며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잖아' '아이고 그 몇 푼 된다고 그러세요! 너무 많이 쓰시면 말씀드릴테니 걱정 그만 하시고 편하게 하시라 해도 안된다.

얼마전까지도 관사에 사시면서도 기름, 전기, 물 엄청 아끼셨다. 한 번은 퇴근해 집에 오니 패딩에 이불을 덮고 계셔서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보일러 빵빵하게 돌리시고 따뜻하게 하세요. 거실에 불도 환하게 켜고 TV보실 때 어두우면 눈 나빠지니까 좀 밝게 하세요' 그랬더니 '전기세, 기름 값 비싸다'고 하셨다.



여기는 지휘관 관사라 일정부분 지원되니까 좀 궁상 맞게 사시지 말고 돈 감당 못할 것 같으면 말씀드리겠다고도 했다. 그래도 안된다. '내 돈 아니라고 나랏 것을 낭비하면 안된다'라고 하신다. 배움이 많지 않고 이제 늙으셔서 해마다 달라지시지만 검소함, 내 것 아니여도 아끼는 그 마음은 배워야겠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에 儉(검소할 검)를 써서 보내며 재물이나 땅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지만 이 글자의 뜻을 마음 속에 품고 잊지 않으면 비루하게는 살지 않을 것이다고 한 것이 생각난다. 그런 글을 쓴 다산보다도 평생 몸소 실천으로 자식에게 보여주신 이 부분 만큼은 더 훌륭하지 않는가!

마음에 들어하스는 게 궁금해  종업원을 바꿔 달라해서 사진 찍어 보내라 하고 체크해 보았다. 내가 갔어야하는데...  이 사람들이 노인네들을 무슨 말로 후렸는지..  

매번 이렇다. 어머니는 마음에 드신 듯 했으나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이 더 싸다고 말씀 드리고 서울 가서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보고 큰 짐도 안되니 사 오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하신다.

그러는 동안 산자락에서 살짝 물러난 구름 덕에 바다에는 석양 빛이 반사 되기도 한다. 잔잔한 청초호에 빛이 눈에 부시지 않게  편하게 반짝 거린다. 붉은 햇빛은 야간 오지어 잡이 배가 가르는 하얀 물쌀에 흔들리며 일렁이며 점점 작아지는 물결의 포말과 함께 때로는 푸른색으로, 때로는 흰색 물보라로, 어느 한 순간은 작은 무지개도 보여 주다가 잠잠해지며 배를 보낸다.

혹, 두분이 저 배처럼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과연 나는 저 뒷 물결처럼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예전에 부모 잃은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데 이제는 언제인가 올 그 순간이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나도 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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