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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May 10. 2023

양양 오일장

떠나기 전 마지막 양양장터




잠시 잊었던 양양 장날! 4, 9일장!

어머님께서 아들이 좋아하는 호떡을 사 오신 것을 보고 양양 장날임을 알았다. 오십을 넘긴 아들이 좋아한다며 찬바람 부는 겨울 장터에서부터 숨을 헐떡이시며 달려오셔서 검은색 봉지를 여시곤 식기 전에 먹이시겠다며 굳이 입에 넣어주신다.

어깨, 무릎, 팔, 다리 등 전신이 불편하셔서 거의 매주 서너 시간씩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치료를 받으러 다니시는 분이 뛰어 오셨다니...  
어디서 저런 힘이 나시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참! 엄마란 존재는 위대하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입속 호떡에서 느껴지는 장터의 고소함과 어머님의 자식사랑이 발걸음을 자연스레 장터로 이끌었다. 장날이면 가끔씩 들러 시골장터의 훈훈한 정과 포장되지 않은 사람들의 진솔한 표정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가 하면, 한편 가끔씩 파고드는 쓸쓸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곤 했던 정겨운 곳이라 그런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장이 저물기 시작하는 겨울 장터엔 넓지막한 자판을 정리하는 중년의 아저씨, 그 옆에 열심히 돈을 세고 있는 할머니로 보이는 여성, 분명 둘은 삶의 무게를 같이 해 온 부부처럼 보이는데, 서로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각자의 역할에서 이 장터에서의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보냈을지 상상이 되면서 그들의 장터에서의 오랜 삶의 흔적이 느껴졌다.

어둑해지는 느지막한 시간에 낮은 건물 사이로 햇볕이 중간중간 들어오는 곳도 있다. 그 골목 한 모퉁이에는 흰색으로만 덮인 머리카락을 가지신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 이름 모를 바싹 마른 나물을 팔고 계신다. 남은 나물을 팔기 전엔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지 않을 기세다. 저걸 다 팔아야 집에 필요한 물건도 사고 돌아가는 짐도 덜어낼 수 있으니, 쉽게 자리를 정리하지 못하실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들에게도 오월의 햇살을 눈부시게 맞던 화사한 봄 꽃 같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엄마가 사 오셨을 호떡집은 이미 정리한 지 오래인 듯 비닐로 다 싸 놓았다. 주변은 잠시 전까지 장날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까지 다 해 놓았다.
'참 그 주인 성질 한 번 까탈스럽겠네, 조금만 기다렸다 닫지'

그 주인은 팔 만큼만 재료를 준비해 와서 다 떨어지면 정리하고 끝낸다고 소문으로 듣긴 했다. 비닐, 캠퍼스천으로 감겨있는 리어카 호떡집은 아마도 이 상태로 내년 첫 장을 기다릴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은 기억 저편에 있던 옛 추억도 꺼내게 해 준다. 언제인가 한 동료가 진지하게 말해 주었다.
'사람이 너무 까탈스러우면 인간미가 안 보여, 주변도 좀 빈틈이 있어야지!'
'군인의 정리정돈은 누구에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전이 되거나 야간 등화관제시 준비태세를 위한 거고, 전장에선 흔적을 없앰으로써 생존성을 확보하는 거야!'

화내던 때가 생각났다. 입 밖으로 나오려던 호떡집 사장에 대한 평가를 얼른 주워 담았다. 그 잔소리하던 친구도 잘살고 있다는 소식이 기억나 고마웠다.

그래도 주변 정리는 깔끔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타인에게 스트레스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걷다 보니 얼마 전 오픈한 양양 유일의 영화관, '작은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산 좋고 물 맑고 상쾌한 공기가 공짜이지만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소외되었던 지역에 서울과 동시에 최신작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 더해 1층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맡을 수 있는 진한 커피 향은 옵션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남대천 둑방길로 나오니 태백산맥 너머로 울긋불긋 수채화 같은 석양이 보인다. 저 해가 넘어갈세라 둔치와 둑방길 가에서는 짐을 싸는 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 많은 것들을 작은 트럭에 차곡차곡 싣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서두르는 걸 보니 장사가 잘된 듯 짐작되었다.

다소 아쉬워 보이는 것들은 온종일 찬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렸지만 선택받지 못한 진열품들이다. 하지만 따스한 겨울 햇살과 설악산의 피톤치드로 온몸을 샤워했으니 그들도 밑질 것 없는 장사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끊고 다시 그 좌판이 있던 골목에 접어들자 어느새 다 사라졌다. 감쪽같다. 역시 겨울 오일장은 점심때 나와야 한다. 여름이었다면 아직도 왁자지껄 했을 것인데 겨울장 해 질 녘 파장은 스산하기만 하다.

마치 여기를 떠나야 하는 마음을 아는지? 다시는 오늘같이 여유 있는 양양 5일장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보이지도 않는 해는 그 여운마저도 걷어 가고 벌써 어둠이 장터를 채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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