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어디로 가나? 230518
"부산 갈 수 있는 젤 빠른 걸로 주세요"
"12시 반 이후에나 있습니다."
"예? 지금이 10시 반인데 두 시간이나 기다리라고요?"
"네. 다 매진입니다."
"입석이 됐건 뭐가 됐건 일단 주세요. 가면서 알아서 할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설명드리겠습니다. 이거는 SRT, 천안아산역에서 내리셔서 한 10분쯤 후 KTX로 갈아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전 표 끊는데서 벌인 꼰대의 억지이다. 부산으로 어제 먼저 내려가신 부모님, 이사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음 날 따라나선 것이다. 아내가 예약해 준다는 걸 한사코 사양했다. 사실 그것이 편한 것임을 안다. 핸드폰으로 쉽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가 좋고 기차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마냥 좋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오고 가는 사람들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거기에 더해 내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추억 속으로 공짜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메마른 50대 아저씨의 가슴에 감성의 비를 공짜로 뿌려 주는 것 같다.
기억 속의 첫 열차는 밤차였다. 약 50년 전 부모님은 어린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좋은 도시에서 키우시겠다고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리셨다. 그로부터 정확히 50년 후 어제 다시 열차에 몸을 실으시고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아내는 부모님의 귀향 열차를 예매하면서 하기 싫은 마음이 불쑥불쑥 몇 번이고 들었다고 한다.
한 20년을 모시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아이 둘을 낳았다. 거의 매주 부모님 댁의 아이들을 보기 위해 오고 갔다. 참 그때는 철길에 돈 많이 뿌렸다. 그런 우리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결단을 하셨다. 전국을 옮겨 다니는 아들, 며느리 직장과 아이들을 보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는 자식과 며느리를 먼저 생각해 주셨다고 한다.
감사한 두 분께서 화장실에 가신 사이 멍하니 추억과 대화 중인데 누군가 툭 친다.
"여보! 여기 수서역 엄청나지?"
"응. 근데 난 시설보다 좋지만 열차, 기차, 철도, 철길 뭐 이런 단어만 들으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야"
"어떤 블랙홀?"
"추억의"
"뭐 어릴 때 부산역에 내리던 일, 우리 아이들 보러 당신이랑 열차 타고 내려왔던 거, 돌아가신 큰아버지랑 시험 보러 서울 같이 갔던 일..."
"좋겠다. 나는 기차와 관련된 기억이 많지 않은데..."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두 분이 오셨다. 풀랫폼에서 뭐가 그리 아쉬운지 이야기가 길어진다.
"건강히 사세요"
"너희도 잘 살아, 밥 잘 챙기고'"
"여름휴가 때 내려갈게요"
"카드 돈 빼는 거 해봐야 하는데.. 급하신면 둘째 안 테 해달라 하세요"
"응, 알았다니까. 주차비 많이 나온 게 얼른 들어가라"
그냥 못내 아쉽다.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다. 의미 없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쓸데없는 이야기만 오고 간다. 그렇게 돌아서 왔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다시 돌아서 발걸음을 재촉해 열차에 올라탔다. 아직도 10분 정도 남았다.
"엄마, 아버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자주 내려갈게요. 엄마는 차 좀 조심하고요. 갈게요"
"그래, 얼른 들어가, 차 막힌다"
안타까운 시간은 빠르기도 하다. 돌아서 나오려니 아내가 들어온다. 창밖으로 뭔가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고 간다. 들리지는 않지만 서로의 아쉬움 만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열차는 떠나고 나는 돌아왔다. 역이란 참 신기로운 곳이다. 누군가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떠나고 누군가는 이별을 아파하고 떠나고 도착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파하며 돌아섰다.
집으로 와 씻고 보니 부모님께서 안 계신 좁은 안방이 크게만 느껴진다. 그분들이 안 계시고 쓰시던 물건들이 모두 비워진 공간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도착하셨다고 전화 주셨다. 두 시간 반 조금 넘은 것 같은데 벌써 내리셨다고 한다. 금방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마음은 이상하다. 매일 뵙던 두 분이 안 계신 집이 이상하다. 이삿짐은 내일 새벽에 내려간다 했다. '직접 가서 불편함이 없게 봐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잠시만 눈을 감았다. 눈을 떠 보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허둥지둥 집을 나서 우여곡절 끝에 열차를 탔다.
시간은 빠르다. 벌써 몇 년 전인가? 그런데 사실은 기차도 엄청나게 빠르다. 벌써 도심지를 한 참이나 벗어났다. 회색 빛 창밖 세상이 또 금세 지났다. 차창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변신한다. 벌써 파릇파릇해진 신록의 녹색 배경으로 바뀌더니 멀리 보이는 산고비, 아파트, 도로의 차들을 실시간으로 바꿔준다. 마치 예술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것에 자연스레 동의가 된다.
이렇게 계속된 화면에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터널 속을 지난다. 터널과 블락홀? 뭔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끝도 없이 끌어들인다.
꽤 오래전 큰아버지는 세상을 달리하셨다. 조카는 여기서 가끔 그리워할 따름인데 큰아버지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수도 있을 것이다. 큰아버지는 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육사 시험 보러 가는 조카 걱정에 당뇨와 합병증으로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멀리 시골에서 밤샘 야간열차를 타고 오셨다. 그리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먼 거리를 야간열차를 타고 동행해 주셨다. 심지어 평소 잠이 부족했던 조카가 늦잠 때문에 2차 시험을 제대로 못 볼까 하는 걱정으로 한 숨도 안 주무셨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참 감사한 분이다.
열차에는 빈 자좌석이 없다. 중간에 내리고 타고 또 내린다. 이런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나이다. 그런데 아직도 열차만 타면 떠오르는 숨겨야 할 수밖에 없는 추억이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가능만 하다면 꿈에서라도 그때 그 열차를 타고 싶다.
외박이나 휴가를 받아 부산에 갈 때면 부산역에서 처음 맞아 주고 복귀하는 마지막 날도 배웅해 주는 것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이가 있었다. 만날 때는 환한 웃음으로, 헤어질 때는 그 큰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웃어주던 얼굴이 선하다.
그럴 때면 안아 주고 싶었지만 학교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참 어리섞었다.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역에서 그 아이와 똑 닮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뒤쪽에서 따라오던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아이의 딸일까?'
스치는 순간 샴푸향도 같은 것이었다. 가는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아니지만 혹 그 딸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부산에 갈 때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웃기도 하고 허망한 기대도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결과야 언제나 똑같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그 시절로 돌아 간 듯 한 기분이 든다.
이제 곧 열차는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처럼 기다려주는 여자친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기차를 타고 있는 이 시간만은 그 설렘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된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에 이 열차의 마지막 역인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
마지막 안내 멘트가 나온다.
'한국철도가 탑승해 주어서 고맙다며 마지막 인사까지 한다. 사실은 혼자만의 추억 열차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 당신들께 감사합니다.'
올라갈 때는 어떤 추억을 주실건지요? 혼자 중얼거려 본다. 혼자 웃어 본다. 멍하니 걸어 나오다 보니 다들 우산을 들고 있다. 진짜로 봄비가 내린다. 추억이 비를 부른 것인지, 기차가 데려다준 추억 속의 간절함 이비가 되어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기차가 전해 준 추억의 블랙홀에서 벗어나 우산 없이 빗길을 따라 걷는다. 이제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