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aust Lucas Sep 5. 2024
잊을 수 없는 사랑
돼지껍데기
- 먹기 싫던 게 먹고 싶은 게 되고 -
돼지껍데기! 엄마의 아들 사랑!
일반적으로는 이 둘은 무관한 듯 하지만 내게는 뗄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언제부터인가 근무지를 옮기면 돼지껍데기, 돼지 부속집부터 찾기 시작했다. 간판만 봐도 반갑다. 가는 길에 보이면 위치를 외워 놓는다.
여기 동해안 와서는 아직 보지를 못했다. 원재료를 파는 곳도 못 보았다. 분명 어디인가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모를 뿐!
돼지껍데기!
말 그대로 돼지고기 중 껍데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국어사전에는 '껍데기는 겉을 싸고 있는 딱딱한 것'만을 한정하기 때문에 '돼지껍질'이 표준어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돼지껍데기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그것은 가끔 생각나는 음식이다. 어릴 적에는 아주 싫었다. 돼지고기에 붙어 있던 비계, 거기에 또 붙어 있던 먹을 수 없던 껍질. 가끔은 빨간색 도장 자국과 털도 붙어 있었다. 보는 순간부터 식욕을 싹 가시게 했다. 요즘 같으면 다이어트 식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그 껍질을 가죽이라고도 한다. 돼지도 가죽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가방에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너무 얇아서 소재로 쓰기가 어려울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은 여성 가방에 안 쓰인다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 피부 미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여성들이 이 껍데기를 들고 다니지 못하니 먹거나 온몸에 발라서라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이 천덕꾸러기는 몇 년 전부터 또 다른 형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껍데기에 콜라겐이 다량 함유되었다는 미신(?)이 TV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아줌마들은 그것으로 피부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콜라겐을 먹든 피부에 바르든 인체에 콜라겐이 흡수되는 건 아니다. 먹거나 바르면 이뻐진다는 믿음, 이쁜이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모르겠다.
맛은 어떤가? 돼지고기 부위 중 비계처럼 아직은 잘 먹지 않는 부위다. 누군가는 '진정한 미식가는 비계를 잘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도했다. 게다가 푹 끓이면 젤라틴, 더 푹 끓이면 아교의 원료가 된다. 하지만 몇몇 경우 이것만 따로 벗겨서 숯불이나 프라이팬에 구워 먹거나 볶아 먹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궁합이 맞다.
그래서일까? 40대를 넘기면서 점점 애틋해지는 음식이다. 어릴 적 처음 먹던 느낌은 맛도 식감도 아니었다. '엄마는 가끔 프라이팬에, 김치찌개에, 냄비에 담아주셨다. 다른 친구들 도시락을 보면 돼지 살코기도 많던데...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돈 없는 30대 초반의 엄마는 한 참 먹성이 터진 아들 녀석들에게 무엇인가 고기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쥐꼬리만 한 남편 월급으로 월세, 육성회비, 연탄, 전기세, 쌀 값 등등 쓸 곳이 오직 많았을까? 아마도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맛없다고 투덜거리고...
그래서 그런지 양념을 찐하게 하셨던 것 같다. 고기 맛을 못 내니 양념으로 숨겨서라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원하는 걸 못 먹이는 엄마는 몰래 눈물을 훔친적도 한 두 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어려운 가정사정은 그 곱디고운 귀한 딸, 꿈 많던 소녀, 피붙이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고 엉엉 소리 내어 울게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풍파에 시달려 눈물도 많이 마르신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해 달라 조르면 맛도 없는 것이라 단호히 말씀하신다. '저 어릴 때는 왜 그리 많이 해 주셨냐?' 여쭈면 그때는 맛이 있었고, 요새는 중국산이 거의 대부분이라 몸에 안 좋다고 얼버무리신다. 화제를 바로 돌린다. 서로 어색해서일까?
이제는 돼지껍질을 보면 엄마를 대신해 내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 젊은 엄마가 해 주신 돼지껍데기를 먹고 싶다. 엄마의 사랑이 묻어있는 돼지껍데기를 먹고 싶다. 그때는 먹기 싫던 것이 이제는 먹고 싶어졌다. 연세 지긋한 부모님 세대가 그 예전 살 밥 대신 드셨던 보리밥이 별미가 된 것처럼...
돼지껍데기는 엄마의 눈물 어린 아들에 대한 사랑!
그 자체이다.
아직도 엄마의 어린 아들인가 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엄마에게 나는 아직 어린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