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자마자 뼈를 제대로 맞았던 책,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사회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명확하다. 따라서 책 자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기보다는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나열하고자 한다.
쾨젤리츠는 음악과 언어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펜과 종이의 질에 의해 종종 좌우되지.'라고 말했다. 니체는 이에 대해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라고 답했다. - 46p
1.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보통 내가 글을 쓸 땐 전에는 워드, 요즘은 브런치 혹은 인스타그램, 그리고 일기장 위인데 각각의 종이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전에 워드로 이런저런 소회를 적고는 했을 땐, 남에게 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닌 온전히 오늘 하루를 쏟아내듯 정리하던 글이라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분량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얼토당토않게 길어져 버리기도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글의 짜임새를 종종 신경 쓰게 되었으며 글의 구조가 잘 세워지지 않으면 뭐라도 쓸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브런치는 온전하고 사려 깊은 글들만이 떠다닐 수 있는 바다 같기 때문이다. 다른 글들에 비해 내 가벼움은 아주 깊어 내보이기가 항상 부끄러운 탓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글을 쓸 때 유의하는 건 줄 바꿈과 단문이다. 끄적거렸던 글들을 인스타에 옮기게 될 때는 줄 바꿈과 단문을 위해 거의 다시 쓰는 편이며 엔터(공백)를 만들기 위해 번거롭더라도 '인스타 공백 닷컴'을 거친다.
일기장에 쓰는 경험은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쓰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우선 공들여 고른 좋아하는 두께의 종이, 좋아하는 펜, 좋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후 잠시 핸드폰을 제쳐두고 온전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단어들로 최대한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또한 지울 수 없게 볼펜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일단 문장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 설령 내 못난 마음이 빼꼼 나와버린다고 해도 말이다. 그만큼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2. 책에는 구글과 애플 이야기도 비중 있게 실려있다. 나는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고, 그 프로세스에 자유롭지 못한 직업군이라 읽으면서 양심이 여러 번 찔리는 지점들이 있었다. 특히 지금 회사에서도 데이터를 자원 삼아 움직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윤리적인 것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한 회사의 팀원으로서 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한 행동들이 초래할 결과를 들여다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3. 책의 223p에 이런 말이 나온다.
'대다수는 문서를 재빨리 훑었으며 그들의 시선은 대략 알파벳 F의 형태를 띠며 페이지 아래를 향해 건너뛰는 식이었다.'
소름 끼치게도 내 시선은 이 문장을 읽은 후 정확히 페이지 밑으로 향했다가 화들짝 다시 되돌아왔다. 이후 이 문장은 종종 나를 각성시켰는데, 잠시라도 집중도가 떨어지면 금세 내 시선은 자석처럼 책의 밑동을 향해 이 강제로 자꾸 눈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F 읽기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말 디지털 디톡스가 시급하다.
4.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웹페이지를 둘러보는 시간이 평균 19초 ~ 27초가량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채 30초도 넘기지 못한다는 소린데, 많은 콘텐츠들이 이를 위해 더욱더 자극적이거나 파편화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이미 유튜브는 선두에 서 있는 것 같다. 여유 하나 없이 초단위로 자막 또는 오디오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편집 트렌드가 그러하다.
전에 한 번, 뉴스나 줄글로 읽을 수 있는 콘텐츠들이 유튜브에 범람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디지털 네이티브 지인에게 물어본 적 있다. 글로 읽으면 될 정보를 굳이 동영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나는 동영상이 노출되는 기간 동안 화면을 끝까지 보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불편해 물어본 것인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유튜브 동영상은 음악도, 자막도, 시각적으로도 지속적으로 휙휙 변해 집중할 수 있지만, 줄글로만 이뤄진 콘텐츠들은 끝까지 읽어내리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5. 책을 읽으며 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는 가정집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에 있던 터라 들어오려면 무조건 가정집 대문 같은 걸 열어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어느 날 포스기에 문제가 생겨 오픈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문도 꼭 닫아 놓고, 문 바로 앞에 아주 큰 글씨로 오늘은 휴무이며, 포스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써놓은 종이를 무려 두 개나 붙여놓았다. '0/0일 0요일 휴무'라는 글씨에는 매직으로 색도 칠해 눈에 잘 띄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문을 열고 올라왔다. 적어도 50팀은 가게를 다녀갔을 것이다.
올라오는 고객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었는데 종이가 있었지만 보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종이를 읽었지만 이해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글씨를 모두 읽었지만 이해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올라와서 '포스기가 되지 않는다면 현금을 내겠다.', '포스기가 고쳐질 때까지 있겠다.', '사장님의 계좌 번호로 계좌 이체를 하겠다.' 등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그저 에피소드로 생각하고 넘겼던 일들이었지만 사실은 모두 변화의 면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