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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May 18. 2021

21년 5월 18일을 맞이하며



장미가 피고 내내 좋던 날에 비가 왔다.

달력을 보니 5월 18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김없었다. 광주에선 늘 이쯤 비가 왔다.


올해는 5 민주화 운동이 41돌을 맞는 해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 5월마다 518 민주묘지로 체험 학습을 갔다. 매해 갔지만  번도 전시관을 눈뜨고 돌아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조숙해 보이고 싶었던 나는 눈을 감고 들어간 전시관에서 호기롭게 눈을 떴다  사진에 며칠을 무서운 꿈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에는 묘지만  둘렀다가 단체 버스 앞에 일찌감치 앉아 음료수를 홀짝였다.  주변에는 나랑 같이 앉아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전에는 맹랑한 생각을 했다. 나도 80년에 학생이었다면 시위대에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해가 갈수록 두려워졌다. 지금처럼 핸드폰도 되지 않던 시대에, 심지어는 광주로 통하는 모든 교통과 통신을 끊은 상황에서, 가끔 창밖에선 총탄 소리가 들려오고, 계속해서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거리에 나설 수 있을까. 누가 사람들을 죽이는 지도, 왜 죽이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리는 가족들을 버리고 길에 나갈 수 있을까.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미처 감추지 못한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올 때면 어김없이 사람들은 내 출신을 물었다. 사실 그땐 광주 출신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정확히 가늠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라도 사람들은 통수 치는 게 특기라던데, 너도 나중에 막 배신 때리는 거 아니냐ㅋㅋㅋㅋㅋ?'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어. 전라도 출신이랑은 친구 하는 거 아니라고.'

'아.. 광주.. 전라디언? ㅋㅋㅋㅋ(자기들끼리 눈빛을 마주치고 웃는다)'

'첨엔 니 전라도 출신이라 좀 그랬는데, 사람 개안내 ~'

'데모 좋아해요?ㅋㅋㅋㅋ'

'(일베 용어)'


기차나 버스를 타러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들이 어딜 가는지를 물었다.

고향에 간다고 말하고 출신을 밝히면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가 쏟아졌다.


'가족 중에 혹시 빨갱이 있어요?'

'내가 예전에 사업을 했는데 전라도 출신한테 사기를 당했어. 전라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어.

아가씨는 싹싹해 보이네. 아가씨는 그렇게 살지 마쇼.'


나는 가끔 내 행선지가 광주가 아닌 다른 곳일 때면 한숨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티가 나지 않도록 감추려 노력했었다.


또한 갖은 차별적인 말에도 웃으면서 꿀꺽 삼키며 그 상황을 모면하는 법에 익숙해졌다. 혹시라도 내가 이 말을 듣고 화라도 내게 된다면, 거봐 광주 사람들 다 이상해라는 말을 다른 광주 출신 사람들이 뒤집어쓰게 될까 봐.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면 역시 광주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달라하고 단정 짓게 될까 봐, 언제나 항상 괜찮은 척 그냥 웃었다. 지금에야 인이 박혀서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스물 즈음의 난 꽤 힘들었겠구나 싶다.


문제는 내가 언급한 저 발언들이 극히 일부고(심한 건 쓰지도 못한다), 여전히 종종 듣고 있는 말들이고, 심지어는 동일한 교육과정을 밟은 내 또래들에게서도 나오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사실 (이해는 1도 안 가지만) 386 세대까지야 저런 말하는 거 어찌어찌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볼 순 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영상물로도 글로도 어떤 형태로도 확인할 수 있는 지금 세상에서, 저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차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일종의 호혜를 베푼다는 자세까지 취할 때면 정말 아득해진다.


자그마치 41년이 지났다. 518 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26년이다. 518은 광주에 숨어있던 아주 많은 빨치산들이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 자신의 출신을 숨기다 통수치듯 폭동을 일으킨 게 아닌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싸운 운동이다. 또한 동시에 죄 없는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군부를 저지하려는 행동이기도 했다.


추잡스러운 야욕에 인간말종 짓을 한 건 전두환이다. 광주를 매도한 후 함락해 집권 세력을 강화하려 했던 더러운 의도, 다들 뉴스에서나 다큐에서나 역사책에서나 몇 차례 확인한 사실 아닌가. 선거로 뽑힐 자신도 없어서 광주를 타깃 잡아 호도하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다 싸잡어 죽였던 찌질한 범죄자에 불과한 자다. 그리고 광주는 엄연히 피해자다. 매해 바라는 바건데, 제발 이제는 그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혼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지역에 터전을 잡을 전라도 출신들이, 자신의 출신을 밝힐 때 더 이상 움츠러 들 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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