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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Sep 19. 2021

매도 먼저 맞으랬다고

어른이 되어서야 쫄보가 되어버린 어른이의 후회




어렸을 적 나는 병원과 주사를 겁내지 않는 호기로운 어린이였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병원과 주사가 무서운 어른이 되어간다. 한의원에 갔다가 부황 처방이 내려지면 그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내과에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플 걸 알면서도 꼭 아프냐고 물어보고 싶다. 호기로운 어린이는 왜 겁쟁이 어른이 되어버렸나.


겁쟁이 어른은 생각보다 이번 백신엔 관대했다.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의사 선생님 앞에서 주사가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씩씩하게 잘 맞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독한 건강 염려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나하나 신경이 안쓰이는 곳이 없다. 팔도 조금 부은것 같고..심장도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것 같아 동생의 애플 워치를 빌려 심박수를 재보기도 하고, 팔이나 다리가 갑자기 찌릿하면 이것이 백신 부작용인가..! 하며 걱정한다.


그렇다. 사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내 성격도 바뀌지 않았을 거다. 그저 어렸을 땐 ‘의젓한 내 모습’이 좋아보여 그만, 쫄보 DNA에 호랑이 탈을 씌워버렸던 것이다. 대충 얹어놨던 탈은 어른이 되어서야 벗겨져 버렸고, 이제껏 숨겨져왔던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마구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전보다 더 많이 병원을 마주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 말이다. 이럴거면 어렸을 때부터 무섭다고 떼를 쓸 걸 그랬다.


2차 접종을 생각하니, 벌써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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