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올해는 내내 생각이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충 서른의 추석이라서 그런다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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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른이 별거는 아니지만, 나를 이루는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특히 '나는 ~~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긋나는 경험을 평소보다 자주 마주한다. 늘 새롭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의 나의 어리석음과 뱉어낸 말들에 통탄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무시하려는 중이다. (하지만 이불킥은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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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주에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년을 살았고 서울에서는 또 10년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기간으로 치면 엇비슷한데 이번에 광주에서 느낀건 내가 광주를 많이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부터 그랬다. 따뜻한 가을 냄새, 집냄새, 내 방에서 바라보는 노을 등등 좋아하는 것 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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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빠 엄마랑 같이 특선 영화를 기다리며 지리산 와온마을 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둘째 아들이 그랬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힘들어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다고. 그러면서 비빌 구석이 있어서 돌아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서 씩씩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내게도 너무나 안전한 비빌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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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 낙천적으로 사는 아빠한테 흰머리가 꽤 생겼다. 이렇게 쾌활하게 사는 아빠한테도 흰머리가 생기다니. 조금 슬퍼서 코를 훌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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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려올때마다 생각한다. 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음식부터 이불, 함께 할 여행 등등 많은 걸 준비하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금세 머물다 가버린 자리와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마음은 어떠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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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늘 떠나오는 길은 마음이 편치 않다. 좀 더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걸,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걸. 얼굴 못본 친구들도 만나고 올 걸. 회한만 주렁주렁 달고 떠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