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글쓰계 시즌2 - 세 번째 :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나만의 방법
가만 보면 전엔 가라앉는 기분에 익숙했던 것 같다. 한 번 생각이 엉키기 시작하면 무장 않고 휩쓸렸다. 그리고 얼룩지고 뭉텅이진 마음을 오래 끌어안고 있었다. 잠시 친구를 만나거나 수업을 듣으러 갈 때는 일시정지를 누르고, 혼자가 되는 순간에는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적당히를 몰랐다는 거다. 이 기분을 빠져나갈 겨를은 만들어 놓아야 했지만, 난 무거운 쇠공을 몸에 묶는 마음으로 검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노트북에 워드를 켜고 생각들을 칼처럼 뱉어내기 시작했다.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모른 채였다. 늘 새벽 어스름에야 끝이 나면 동튼 빛이 방에 스민 탓에 내 모습이 비쳤다. 칼자루를 쥔 건 나였지만, 갈피 없는 칼날에 할퀴어진 것도 나였다.
종종 생각했다. 부정적인 마음이 생길 때마다 모두가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을 물었다. 답은 다양했다. 냉장고를 청소하는 사람,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집을 찾아가는 사람, 그럴 때만 빅맥을 먹는다는 사람, 뜨끈한 온탕에 딱 20분 담그고 나온다는 사람. 다들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다.
우울이 소진될 때까지 그대로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 기분을 적금처럼 더해지고 불어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고갈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 함께 온통 먹색인 바다에 빠져 놓고는 이내 수면으로 향했다. 우울이 소모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닮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 다짐했던 것 같다. 나도 이렇게 아래로 아래로 꺼져가는 것보단 미역 떼라도, 산호 뿌리라도 디딤판 삼아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야겠다고.
처음에는 사람들을 따라 해 봤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것들을 따라서 음식도 먹어보고, 어디에도 가보고, 좋다는 건 다 해봤다. 무작정 하다 보니 좋고 싫고를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이게 행복을 위한 시험지라면, 동그라미와 빗금과 세모와 별표를 칠 수 있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수월해졌다. 별표와 동그라미들만 예쁘게 모아놓으면 되었으니까.
그만큼 내 선호에 집중하게 되면서 나는 따라 예민해졌고 민감한 성격은 기호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예를 들면, 시험기간에 자리를 찾으러 깊숙이 들어간 도서관 장서실에서, 짙게 배인 책 냄새와 책 위로 먼지가 실낱 같이 내려앉는 소리에 반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세상에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구석들은 많았다.
나는 별표와 동그라미들로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요즘 다이어리 꾸미기, 스토리 꾸미기 등 ‘0꾸'가 유행이라던데 어떻게 보면 인(생) 꾸(미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 한 달을 그려놓고 별표와 동그라미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갔다. 불행이 들어찰 틈이 없이 아주 빽빽이. 오래된 도서관에 가서 책 냄새를 맡는 것, 독립영화관에서 독립영화를 보는 것, 궁을 산책하며 허황된 상상에 빠져 보는 것, 피아노를 치러 가 손가락이 얼얼할 때까지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장소에서 한 잔을 기울이는 것, 마음이 녹아내리는 노래들을 모아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듣는 것, 무릎에 든든하게 테이핑을 하고 30분을 뛰거나 좋아하는 자전거 코스를 다녀오는 것, 물에 들어가 근심 걱정을 씻어버리는 것.
이들은 곧 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의도적으로 움직이고, 의식적으로 행복을 자각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한 것이다. 나쁜 기억이 생기더라도 이젠 행복의 더께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수렁에 빠질 틈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나만의 방법은 축축한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하루들이다. 세상 귀퉁이에서 행복을 찾고, 감탄스러운 것의 면면을 아끼는 버릇을 들였던 모든 시간이 내게 낙관을 선물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난, 한결같이 행복하다.
글. 스밍 @2smming
<다함께글쓰계> 함께 쓰고 모으는 글쓰기 계모임.
내가 쓴 글은 한 편이지만, 같은 주제로 쓴 다른 글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즐거움을 느끼며 브런치, 인스타그램(@together.writer)에 함께 글을 써갑니다.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혼자 쓸 때보다 다 함께라 재밌고 든든한 글쓰기 계모임. 함께 글 쓰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