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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Dec 19. 2022

'더 스탠다드 방콕' 호텔의 사려 깊은 카피라이팅

마케터의 시선으로





올해 여름에 오픈한 더스탠다드 방콕에 다녀왔다. 가기 전부터 모든 후기가 칭찬일색이기에 기대도 많이 했었지만 차원이 다르게 좋았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호텔의 사려 깊은 카피들이다. 머무는 내내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재치 있는 카피를 발견하는 과정이 보물 찾기처럼 즐거웠다. 이렇게 재미있고 섬세했던 더스탠다드 방콕에서 발견한 카피들을 모아보았다.




룸 카드 : Tap Me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후 받은 카드에는 'Tap me'라고 적혀있다. 룸 카드는 리셉션 다음으로 마주하는 호텔의 인상인데 카드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호텔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호텔에 투숙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했던 날도 스쳐 지나갔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카피는 엄청난 위안이 되지 않을까?



스피커 옆 안내문 : Little speaker, Big Sound

객실을 둘러보니 스피커가 있었다. 그런데 방 크기에 비해 스피커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동행인과 나는 스피커를 바라보며 동시에 '진짜 작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Little speaker, Big Sound(작은 스피커, 커다란 소리)'라고 적혀있었다. 우려스러웠던 마음이 단숨에 사라지면서도 스피커의 성능을 믿게끔 하는 문구였다. 그제야 스피커를 작동시킬 마음이 들었다.


침대 위 : Nurture our nature

호텔에서 연박을 하는 경우, 침구 위에 ‘침구 교체를 하지 않는 경우 N만큼의 물을 아낄 수 있습니다.’ 혹은 ‘환경보호에 동참해주세요’ 같은 안내문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문구를 볼 때마다 내가 침구 교체를 하는 행동이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행동이라는 느낌이 들어 찝찝했다.


하지만 더스탠다드는 굳이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주어를 ‘우리’로 두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읽히면서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끔 했다. ‘우리의 환경을 가꿔요.’라는 카피로 말이다. 이 카피를 읽은 고객들은 내가 그랬듯, 보다 자발적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룸서비스 메뉴판 : Hungry?

휴양지가 아닌 곳에서의 여행에서는 룸서비스를 잘 시키지 않는다. 방콕이라는 도시 역시 볼거리가 많은 관광 도시라서 저녁까지 먹고 호텔에 들어오는 편이라 룸서비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더스탠다드 방콕의 룸서비스 메뉴판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Menu'가 아닌 'Hungry?(배고파?)'라는 직관적인 카피로 나를 홀렸기 때문이다.


내가 보통 룸서비스를 시키는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보통 밥을 먹고 나서 출출할 때 시키는 편이다. 특히 밤에 술을 마실 때라든지, 수영장에 다녀와서 배가 고파졌다든지. 그런 면에서 'Hungry?'는 완벽하게 고객의 심리를 파악한 카피다.


'Hungry?'라는 카피는 욕망을 먼저 일깨우고 고객으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한다. 카피 덕분에 고객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기 위해 룸서비스 메뉴판을 펼쳐보지 않는다. 대신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니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열어본다. 메뉴판이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되게끔 설계한 치밀한 카피인 것이다.




우산 옆에 : Keep you Dry

만약 여기에 '비가 올 수 있으니 우산을 가져가세요'라고 쓰여있었다면 대충 읽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Keep you Dry'라는 문구로, 내가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을 때 비 맞을 내 모습을 먼저 상상하게 했다. 비가 자주 오는 방콕에서는 분명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비에 온몸이 홀딱 젖기 싫은 나는 우산을 꼭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산 디자인도, 퀄리티도 굉장히 좋아서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래 부가 설명란이 있었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면 1층 샵에서 한 번 봐보라고. 만약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이 있다면 차라리 사는 편을 선택하지 않을까?



호텔 복도에서 발견한 : Watch Out! I'm Wet

보통 이렇게 미끄러운 구간이 있다면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나 '미끄럼 주의' 같은 정중한 어투의 문구가 쓰인다. 개인적으로 포멀한 말투라 잘 와닿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많다. 그런데 이 안내판은 달랐다. 눈에 띄는 빨간색 안내판에 Watch Out!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I'm Wet이라는 문구를 덧붙여 물웅덩이가 소리 지르는 느낌이 나게 했다. 물웅덩이가 직접 내게 말하는 느낌이라 경고 문구에 위험함이 더 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짐을 맡겼을 때 : We've all got baggage

개인적으로 체크인/체크아웃 시 호텔에 가방을 맡기는 게 고마우면서도 괜히 멋쩍을 때가 있는데 'We've all got baggage'라는 문구가 쓰인 라벨을 캐리어에 달아준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의 짐을 가지고 있다니.

가방을 맡기면서 들었던 불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웃을 수 있는 카피였다.




이렇게 더스탠다드에서 발견한 카피들을 모아봤는데 두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 번째로는 고객이 느끼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안내 카피를 작성했다는 점, 두 번째로는 실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행동하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행동을 만드는 욕망을 먼저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구는 안내가 필요한 지점에만 존재한다. 또, 의미 없이 중언부언하지 않고 꼭 필요한 짧은 말로 이뤄져 있다.


일을 하면서 내 손을 거쳐간 많은 안내문과 카피를 생각해봤다. 본질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쳐낸’ 문구들도 분명 있었다. 안내를 위한 안내 문구를 작성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카피는 고객의 마음이든 몸이든 움직이게 하는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TMI처럼 느껴지는 문구가 아닌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한 줄. 안내자 friendly가 아닌 고객이 듣고 싶은 말.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여기 모은 카피들도 엄청난 고민의 결과로 나온거겠지.


이 게시물은 문구를 쓸 때마다 자주 들여다 볼 것 같다. 감탄했던 순간들을 잘 기억하고 나도 그런 글을 쓰는 마케터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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