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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Jul 15. 2017

#47 <옥자> 소통에 필요한 것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자와 옥자. <옥자>스틸컷


 옥자는 돼지다. 하지만 다른 돼지들과는 다르다. 뉴욕의 육류 가공 기업 미란도에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유전자 변형 생물이다. 미란도는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돼지들을 여러 나라에 위탁해 10년간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을 알지 못하는 미자(안서현)는 옥자와 함께 산을 타고, 물놀이를 하며 자매처럼 지낸다. 한국에서의 실험기간이 끝나자 기업은 옥자를 데려가지만 미자는 가족과도 같은 옥자를 떠나보낼 수 없어 옥자를 구하러 서울로 떠난다.


 서울은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곳이다. 회사로 찾아가 보지만 투명한 유리문은 굳게 닫혀있다. 유리문 안에 있는 직원은 미자가 아무리 소리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옆에 있는 전화기를 사용하라는 말만 건넨다. 무정한 이 곳에서 미자는 목이 터져라 옥자를 부르고 또 부른다. 다행히 옥자를 찾는 사람은 미자뿐만이 아니었다. ALF(동물 해방 전선) 또한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다. ALF는 옥자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고 또 다른 옥자들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옥자에 새로운 칩을 장착한 채로 미란도의 연구소에 보내 그 실상을 고발하는 것이다.


<옥자>스틸컷


 옥자의 가족인 미자에게 ALF의 수장 제이(폴 다노)가 동의를 구한다. 미자는 한국어만, 제이는 영어만 할 수 있기에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단원인 케이(스티븐 연)의 통역을 거친다. 케이는 한국어가 서툴다. 제이가 ALF의 탄생 취지에서부터 단체의 목표 등을 상세하게 이야기할 때 케이는 짧은 한국어로만 전할 뿐이다. 제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은 미자에게 도달하지 않는다. 제이와 단체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제이는 묻는다. 옥자를 뉴욕으로 보내도 되겠냐고. 미자는 옥자랑 산으로 갈 거라고 말한다. 케이는 말한다. "우리에게 동의한대"


 케이는 미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통역했다. 이 때문에 미자의 뜻과 달리 결국 옥자는 뉴욕으로 보내지고 연구소에서 학대를 당한다. 통역은 서로 다른 언어를 기반으로 한 소통 방식이다. 완전히 같은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통역을 할 때 어느 정도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각 나라의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의도적인 개입은 옳지 않다. 통역의 기본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소통의 본질을 해한다. 후에 케이가 양심 고백을 했지만 ALF에서 영구 제명되는 이유다.  


 또한 ALF가 한강으로 뛰어들기 전 케이가 "미자야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자막에서는 "미자야 영어를 배워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야"라고 나온다. 만약 한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이해하는 데 의도된 개입으로 인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옮겨진 말'로 접한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군가의 관여가 존재한 말들이다. 만약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구사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의 발화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옥자>스틸컷


 심지어 <옥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종종 소통의 벽에 부딪힌다. 감독은 소통이 부재한 모습들을 꼬집는다. 서로는 서로의 말의 의도에 대해 다르게 이해한다. 미자와 희봉, 미자와 회사 한국 관계자들, 미란다와 직원 등이 그렇다. 하지만 미자와 옥자는 다르다. 미자는 종종 옥자의 커다란 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관객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옥자와 미자는 소통하고 있다. 옥자의 말과 미자의 말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옥자의 표정으로 '언어'가 소통에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미자가 옥자를 데리고 나오는 장면에서 한 슈퍼돼지 부부가 자신의 새끼를 몰래 미자와 옥자 쪽으로 내보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소통에 가장 필요한 건 진심이다. 수많은 대화를 나눈 옥자와 미자처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통역이 필요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실 통역의 본래 의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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