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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Aug 02. 2017

#49 <침묵의 시선> 서로 다른 두 침묵

**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침묵의 시선> 스틸컷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영화 <침묵의 시선>은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당시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던 '람리'의 동생 '아디'가 살인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과정을 다뤘다. 감독의 전작 <액트 오브 킬링>에서는 가해자의 시선에서 비친 대학살을 다뤘다면, <침묵의 시선>에서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비극을 담아냈다.


<침묵의 시선>에서는 대학살과 관련한 피해자의 침묵과 가해자의 침묵 사이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먼저 피해자로 대변되는 람리의 동생 '아디'의 침묵이 그렇다. 먼저 아디는 방에서 홀로 TV를 보고 있다. TV에는 살인자들이 재연한 대학살이 담긴 <액트 오브 킬링>이 나온다. 살인자들은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행동에 대해 떠벌린다. 그중 아디의 형 람리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디는 침묵을 지킨 채 조용히 TV를 응시한다. 아디가 침묵을 지키는 건 단지 잔혹함에 할 말을 잃어서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은 아디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이후도 역시 전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산당을 사회악으로 규정짓고 선전하고 있다. 공산당은 종교도 없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각종 악행을 일삼았다고 사람들을 세뇌시켰다. 심지어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이다. 아디가 보고 있는 브라운관 안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들이 자신이 어떻게 공산당을 잔인하게 죽였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표정은 밝다. 아디는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죄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그들의 말에선 공산당은 인권을 가진 인간이 아닌, 악마 그 자체다.


여태까지 인도네시아는 그래 왔다. 정부가 만들어낸 거짓된 진실을 국민 모두가 믿고 있는 곳이다. 학교에서는 대학살의 책임을 공산당에게 떠넘긴다. 전에 우리나라가 북한 사람들을 '도깨비'라 교육했듯, 공산당은 '악'으로 규정된다. 심지어 가족 중에 공산당이 있으면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 당연히 이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아디가 스네이크 강의 생존자를 만났을 때 생존자는 말한다.

"그래 봤자 문제만 일으킬 뿐이야"

아디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디가 학살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머니와 아내가 만류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침묵의 시선>이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할 당시 검열과 강제 상영 취소 운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피해자들에게 침묵은 생(生)의 다른 이름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입을 다무는 게 유일한 방책이었다.


<침묵의 시선> 스틸컷


피해자들의 침묵이 강요당한 침묵이라면, 가해자들의 침묵은 다른 양상을 띤다. 아디는 살인에 가담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마을 처형단 단장으로부터 감옥 문을 지키던 자신의 친척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디의 질문에 불편함을 내비친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 신나서 말을 이어가던 모습과는 다르다. 아디가 학살자에게 자신의 형이 살해를 당했다고 이야기하자 행동부대의 단장은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과 정부에 책임을 돌린다. 심지어 민병대 총지휘관은 아디의 신상정보를 꼬치꼬치 캐물으며 이런 '공산당 짓'을 계속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협박한다.


이후에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학살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인자들의 가족도 비슷한 모습을 취한다. 할 말이 없다, 모두 지나간 일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 그들은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피해자에게 의미 없는 말들을 나열한다. '용서'를 입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왜 죽였냐'는 아디의 질문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이야기만 하릴없이 할 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상황에도 말을 아끼는 이유는 자명하다. 여전히 그들은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말해야 할 때 침묵해버리는 비겁한 짓을 계속한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또한 인도네시아에서도 정식 개봉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이들과, 입을 다물어버리는 가해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엔딩 크레딧엔 'ANONYMOUS(익명)'가 가득하다. 피해자들의 침묵을 침묵으로 묵인하지 않고, 크나큰 외침으로 바꿔주는 것만이 수 많은 익명들에게 이름을 되찾아주는 간단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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