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69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실(?)하다. 내용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지만 사족은 없다. 촬영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감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을 얽어내는 법부터 음악까지.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영화의 제목 '미행'이다.
FOLLOWING(미행)
영화는 빌(제레미 데오발드)과 콥(알렉스 휴)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빌은 작가 지망생으로, 다른 사람들을 미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아 보인다. 그 부분에서 빌은 자신이 누군가를 미행했다고 밝힌다. 이때 빌은 'Shadowing'이라고 말했다가 이내 'Following'으로 고쳐 말한다. 그가 미행하는 방식은 'Shadowing'보다는 'Following'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미행에도 그만의 철칙이 있다. 지나치게 오래 쫓지는 않을 것, 밤에 어두운 골목에서 여자를 쫓지 않을 것, 반드시 아무나 임의로 고를 것, 한 번 미행한 사람을 다시 미행하지 않을 것 등이다.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멀리서만 관망하는 정도가 미행의 전부다. 미행을 하는 이유도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규칙이 깨지는 순간 그의 삶에도 균열이 발생한다.
빌과 콥
빌은 콥을 미행한다. 하지만 곧 걸리고 만다. 콥은 사실 도둑이었다. 하지만 콥 역시 자신만의 도둑 철학을 가지고 있다. 콥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 그들의 나이와 모습, 성격 등을 추측한 후 물건을 훔친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비밀상자를 몰래 본 후, 그들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알려주는 대범함도 보인다. 일단 없어져야만 사람들은 없어진 존재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콥은 자신의 도둑질을 빌에게 보여준다. 왜 남들의 관계를 망치려 드는지, 왜 남들의 삶에 관여하는지 빌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동행은 계속된다. 콥은 빌에게 동화된다. 콥의 말은 어느 순간부터 빌에게 절대적이다. 콥의 조언대로 머리 모양도 바꾸고, 옷도 갖춰 입기 시작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따른다. 콥과 닮은 모습도 보인다. 여자가 빌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말하자, '그래서 그걸 알고 난 후 기분이 어땠나요?'라고 묻는 장면도 등장한다. 빌의 '미행'의 의미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SHADOWING(미행)
어느샌가 빌은 'Following'보다는 'Shadowing'적인 미행을 한다. 콥과 함께 갔던 한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지정해둔 뒤 미행을 하고, 한 번 미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여자를 관음한다. 게다가 그 여자와 직접 만나기도 하며 사랑을 키운다. 빌은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점점 빠져든다. 빌이 처음으로 집을 털었을 때 주인에게 걸릴뻔했고, 그 후 다른 레스토랑에서 주인을 마주쳤을 때 안절부절못하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여자를 위해 두목의 금고를 털다가 술집 직원을 망치로 살해하기까지 한다.
빌은 아(我)와 피아(彼我)의 구별조차 하지 못한다. 콥처럼 사람들의 인생에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그 행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빌은 콥의 희생양이다. 콥은 자신이 곧 저지를 살인을 위해 빌에게 자신의 수법을 알려주고, 범인으로 몬 것이다. 빌은 코너로 내몰린다. 결국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가서 진술한다.
하지만 일은 한참 잘못됐다. 이미 콥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에 빌은 발이 묶였다. 빌은 두 사람을 잔혹히 죽인 살인자일 뿐이다. 결국 빌의 미행은 사실 콥의 미행이었다. 빌은 보여지는 객체에 지나지 않았다. 주체와 객체가 역전된 미행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빌이 난관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