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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Aug 20. 2017

#52 <미행> 빌의 미행

*영화 <미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69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실(?)하다. 내용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지만 사족은 없다. 촬영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감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을 얽어내는 법부터 음악까지.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영화의 제목 '미행'이다.


미행하고 있는 빌(제레미 데오발드). <미행>스틸컷


FOLLOWING(미행)

 영화는 빌(제레미 데오발드)과 콥(알렉스 휴)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빌은 작가 지망생으로, 다른 사람들을 미행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아 보인다. 그 부분에서 빌은 자신이 누군가를 미행했다고 밝힌다. 이때 빌은 'Shadowing'이라고 말했다가 이내 'Following'으로 고쳐 말한다. 그가 미행하는 방식은 'Shadowing'보다는 'Following'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미행에도 그만의 철칙이 있다. 지나치게 오래 쫓지는 않을 것, 밤에 어두운 골목에서 여자를 쫓지 않을 것, 반드시 아무나 임의로 고를 것, 한 번 미행한 사람을 다시 미행하지 않을 것 등이다. 누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멀리서만 관망하는 정도가 미행의 전부다. 미행을 하는 이유도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규칙이 깨지는 순간 그의 삶에도 균열이 발생한다.



콥의 모습. <미행> 스틸컷



빌과 콥

 빌은 콥을 미행한다. 하지만 곧 걸리고 만다. 콥은 사실 도둑이었다. 하지만 콥 역시 자신만의 도둑 철학을 가지고 있다. 콥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 그들의 나이와 모습, 성격 등을 추측한 후 물건을 훔친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비밀상자를 몰래 본 후, 그들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알려주는 대범함도 보인다. 일단 없어져야만 사람들은 없어진 존재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콥은 자신의 도둑질을 빌에게 보여준다. 왜 남들의 관계를 망치려 드는지, 왜 남들의 삶에 관여하는지 빌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동행은 계속된다. 콥은 빌에게 동화된다. 콥의 말은 어느 순간부터 빌에게 절대적이다. 콥의 조언대로 머리 모양도 바꾸고, 옷도 갖춰 입기 시작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콥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따른다. 콥과 닮은 모습도 보인다. 여자가 빌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말하자, '그래서 그걸 알고 난 후 기분이 어땠나요?'라고 묻는 장면도 등장한다. 빌의 '미행'의 의미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SHADOWING(미행)

 어느샌가 빌은 'Following'보다는 'Shadowing'적인 미행을 한다. 콥과 함께 갔던 한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여자를 지정해둔 뒤 미행을 하고, 한 번 미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여자를 관음한다. 게다가 그 여자와 직접 만나기도 하며 사랑을 키운다. 빌은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점점 빠져든다. 빌이 처음으로 집을 털었을 때 주인에게 걸릴뻔했고, 그 후 다른 레스토랑에서 주인을 마주쳤을 때 안절부절못하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여자를 위해 두목의 금고를 털다가 술집 직원을 망치로 살해하기까지 한다.


 빌은 아(我)와 피아(彼我)의 구별조차 하지 못한다. 콥처럼 사람들의 인생에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그 행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빌은 콥의 희생양이다. 콥은 자신이 곧 저지를 살인을 위해 빌에게 자신의 수법을 알려주고, 범인으로 몬 것이다. 빌은 코너로 내몰린다. 결국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가서 진술한다.


 하지만 일은 한참 잘못됐다. 이미 콥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에 빌은 발이 묶였다. 빌은 두 사람을 잔혹히 죽인 살인자일 뿐이다. 결국 빌의 미행은 사실 콥의 미행이었다. 빌은 보여지는 객체에 지나지 않았다. 주체와 객체가 역전된 미행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빌이 난관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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