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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Jul 19. 2017

광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를 보고 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스틸컷


 나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으레 광주의 학생들은 5월이 오면 망월동에 간다. 묘지를 둘러보고 전시관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시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많은 아이들은 그곳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전시관은 무더운 광주의 오월 날씨에도 서늘하고, 참혹함이 넘쳐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시장 출구에는 담임 선생님이 서있다. 전시를 차마 다 보지 못하고 뛰어나오며 울거나 토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서다. 대절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모두가 허재비처럼 멍하다.


 5월이 되면 하나 건너 한 집에서 향을 피운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는 팔을 잃었다. 아빠는 친구들을 잃었다. 아빠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의 아내는 임신한 채로 총에 맞았다. 518이 지난 뒤 학교 책상 위엔 국화꽃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방도 모른 채 자취를 감췄다. 시체로 산이 만들어졌고 시취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군부 정권은 권력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일상속에 스민 이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예술에서 518을 다룰 때에는 주로 작품의 초점을 '지나친 비극'에 맞춘다. 하지만 비극에만 집중하다 보면 감정적 호소에만 그칠 수 있을뿐더러 원과는 가려지고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만 남아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냉정할 필요가 있다. 범죄자의 원죄를 더 가려보기 위해. 그래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의 초반부 장면에서 희망을 보았다.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생각도 없는 만섭(송강호)이 우연한 기회에 광주에 가게 되는 장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영화 시작전 직접 밝혔듯 이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다. 중요한 부분들이 빠져있다. 왜 광주 사람들은 거리에 나섰으며, 총을 맞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왜 연대했는지, 가해자는 누구인지 등등. 물론 이는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 문제가 아니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 지에 대한 만섭의 물음에 재식(류준열)은 모른다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거리에 나간 광주 사람들의 의도를 지워버리고 마치 '타자에 의해' 행동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총을 맞는 시민들은 전개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해버린다. 연대는 '주먹밥'과 같은 몇 가지 소재로 보여주려 하지만 이 또한 복선을 위한 장치에만 불과하다. 제일 중요한 가해자는 이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518의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는다. 단지 5. 18은 영화의 주제가 아닌, 소재로만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총탄을 피하려고 창문에 이불을 욱여넣고 나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오손도손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외갓집이 전남대 근처에 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엄마는 총탄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밖을 나가지 못했다. 광주의 5월은 여름에 더 가깝다. 그 따뜻한 날에 외할머니는 혼수로 해온 그 두터운 이불을 농에서 꺼내 창문을 막았다. 밖에선 총소리가 나고, 간헐적으로 비명소리와 울음 소리가 들리는 생지옥 안에서 덜덜 떨면서 창문을 막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 감독은 짐작조차 못한듯 하다. 그 당시엔 생이 달린 문제였다.


물론 '택시운전사'의 시점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5.18을 마냥 신성화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양한 컨텐츠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알맹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영화를 5. 18 영화라고 과연 부를 수 있을까? 광주로 가는 길은 멀어만 보인다.  


+ 오랜만에 만들어진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련한 영화고, 명배우들의 활약이 특히 눈에 띈 영화였지만 그 부분에 더욱 아쉬워 길게 글을 쓴다.

++ 힌츠페터 역시 영화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데, 단순한 캐릭터로 그린 점 역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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