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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Feb 28. 2018

<리틀 포레스트>에서 굳이 단점을 찾아보자면

그럼에도 영화가 좋은 이유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좋다'라는 말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좋은 감정을 다채롭게 설명할 수 있는 재주는 내게 없었다. 그렇다면 뒤집어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일까 궁금해서다.


너무나 새것 같은 영화

 영화는 비닐을 아직 뜯지 않은 편안한 자동차와 비슷하다. 아주 새것 같은 느낌이다. 파릇파릇한 느낌보다는 비현실적인 느낌에 더 가깝다.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애매해진 상황에서 아주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집은 오래 방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갈하게 세팅된 에어비앤비의 느낌이다. 집에는 먼지도 쌓여있지 않고 찬장에 있는 모든 그릇은 세련됐다. 아주 오래전에 샀을 그릇들이지만 우연히도 요즘 트렌드와 딱 맞다. 혜원의 엄마는 인스타갬성에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혜원의 집에서 슈퍼를 가기 위해서는 자전거로 한 시간을 넘게 가야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잘 볼 수 없는 조리 기구들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 물론 깨끗하게. 한 해 농사를 말아먹은 청년 농사꾼 재하(류준열 분)는 허허실실 웃으며 다음 해에는 좋은 결실이 있을 거라며 마음을 다진다. 요즘 세상에 혜원은 번호키도 없고 잠금장치도 따로 없는 집에 산다. 그녀는 끊임없이 농사를 짓고, 요리하고, 음식을 먹는다. 그렇지만 그녀의 통장은 넉넉해 보인다. 서울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항상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돈에 대해 위험 의식을 갖는 건 극의 후반부에나 등장한다.


더운 여름엔 콩국수가 제격. <리틀포레스트>스틸


넘치는 이야기들

 일본 원작 영화는 계절을 둘로 나눠 주인공 이치코의 삶을 보여줬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사계절을 한 영화에 담았다. 영화는 정성 담긴 음식에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나오는 방식인데, 요리가 많아지며 이야기도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103분의 러닝타임에 13개가 넘는 음식이 등장하기 때문인 걸까, 요리와 에피소드의 관련성이 궁금할 정도의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 사이는 가끔 지나치게 짧고, 이야기 사이에 삽입된 풍경 쇼트에서야 숨을 고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이야기가 요소로 전락하기도 한다. 영화 구성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매우 숨이 가쁘다. 조금 더 러닝타임이 길었더라면, 혹은 조금 이야기를 줄였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혜원과 은숙, 그리고 재하. <리틀포레스트>스틸


결국, 사람

  그럼에도 내게 <리틀 포레스트>는 좋은 영화다. 임순례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했듯, 영화 안의 인물 자체가 가지는 서사만으로도 영화는 힘이 있다.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 1, 2>가 그곳에서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같이'와 '살아내는 삶'에 방점을 찍는다. 세 친구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결정짓게 놔두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해 나간다. 재하는 좋은 기업을 뛰쳐나와 자연과 함께인 삶을, 은숙은 부조리에 가끔 저항하기도 하며 서울 생활을 그리는 삶을, 그리고 혜원은 '아주 심기'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낸다. 일본 원작 영화는 주인공 이치코에 주로 초점을 맞춰 주인공 중심의 서사가 진행되지만,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노동 후 함께 나눠 먹는 막걸리, 화해를 위한 달달한 크림 브륄레,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한 아주 매운 떡볶이 등 함께 복작복작 살아가는 삶을 그린다.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행운인가. 원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영화는 힘들 때의 '힘내'라는 말의 무의미함을 알고 있다. 대신 정성 담은 한 끼를 선물한다. 기다림을 견뎌낸 작물은 얼마나 야무진지, 작물을 더욱더 맛있게 먹기 위해 들이는 품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어쩜 이다지도 따뜻한지 보여준다. '힘내'라고 절대 말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힘이 난다. <리틀포레스트>는 마음이 가득 담긴 따뜻한 도시락 같은 영화다.





**네 명의 좋은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충실하게 살려내는 점도 인상 깊다.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는 짧은 비중에도 빛난다. 세 주인공 은숙(진기주 분), 혜원(김태리 분), 재하(류준열 분)도 마찬가지다. 네 배우의 연기는 영화를 완성한다. 음식을 다 만든 후 뿌리는 깨나 파슬리와 같은 조미료의 역할이다.


<리틀포레스트>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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