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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Jan 02. 2018

#69 <러빙 빈센트> 고흐를 기억하는 방식

 In Loving Memory of Vincent 

 빈센트 반 고흐는 수식어가 많은 화가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매우 많지만 귀를 잘라버린 미치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갱과 친구였던 사람, 귀를 자른 미친 사람, 살아 있을 때 그림이 딱 한 점밖에 팔리지 못한 비운의 천재, 압생트를 사랑했던 화가 등등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유명세만큼이나 반 고흐의 삶을 다룬 영화 역시 많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빈센트>는 고흐와 테오의 삶을 함께 조명한 영화이고, 핌 반 호브의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고흐의 삶 전반을 다룬 영화다. 


<러빙 빈센트> 포스터


 여러 영화 중 가장 돋보이는 건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먼 감독의 <러빙 빈센트>다. 특이하게도 유화로만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배우의 연기를 촬영한 후, 이를 화폭에 다시 담아낸 방식이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고, 62,450개의 캔버스가 필요했다. 촬영 기법 이외에도 반 고흐의 죽음을 다룬 영화라는 점도 눈에 띈다. 드라마 <싸인>의 자문위원이었던 문국진 법의학자의 책 <반 고흐 죽음의 비밀>은 법의학적 시선으로 그의 죽음을 고찰했지만,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주변인들에게 죽음을 직접 묻는다. 


 영화의 주인공 아르망(더글러스 부스 분)은 아버지 룰랭(크리스 오다우드 분)의 부탁을 받고 고흐의 생전 마지막 편지를 그의 동생 테오에게 건네주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테오 역시 숨을 거둔 후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아르망은 고흐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베르로 향한다. 오베르에서 반 고흐와 가까웠던 여러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그의 죽음을 계속 파헤쳐 나간다. 


 하지만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고흐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아르망은 점점 혼란이 온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경계조차 뚜렷하지 않다. 이런 아르망에게 마르그리트(시얼샤 로넌 분)는 말한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차이는 없어요." 


사실 중요한 건 이거다. 그가 어떻게 죽었던, 어떻게 살았던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각자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 고흐는 모두 다르지만 그 모습 역시 그의 본질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고흐와 죽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우리에게 던져줄 뿐이지만 어느새 관객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선을 닮아간다.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던 화구상 탕기(존 세션스 분)나 우체부 조셉 룰랭의 따뜻한 눈길일 수도, 뱃사공(에이단 터너 분)이나 마을 사람들처럼 아니꼬운 눈초리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관객은 고흐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선다. 기억하는 방식이 곧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95분 동안의 영화관 속 미술관을 나설 땐 휘몰아치던 고흐의 그림,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이 남는다. 


 사실 영화 제목은 <In Loving Memory of Vincent>에 가깝다.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며, 빈센트 반 고흐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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