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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Mar 07. 2018

#78 <버드맨> 거울을 마주하는 것




 거울에 비친 내가 유난히도 못나 보일 때가 있다. 하는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을 때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상적인 삶과 현재가 비록 다를지라도 나는 여전히 나인데, 내 옹졸한 마음은 거울을 피해버리게끔 한다. 그렇지만 거울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의 주인공 레이가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할 때, 상담치료사 캐스터가 가장 먼저 내린 처방 역시 '거울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도 자신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과거의 유명세에 매여있기도 하다. 그는 아주 전에 인기 있었던 <버드맨>의 주인공 었지만 지금은 잊혔다. 리건은 대중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면,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에게 이번 연극은 재기를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때문에 앞뒤 분간하지 않고 연극에 모든 것을 올인한다. 딸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배우와 스태프들의 상황은 어떠한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쏟아붓고 사람들을 다그쳐가며 연극에만 매진한다.  


 다행히도 예전의 명성이 남아있는 덕분인지 대중들은 그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대중은 그의 현재가 아닌, 과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연극에 관한 인터뷰를 위해 모여든 기자들은 예전에 떠돌던 가십성 루머의 사실여부를 확인한다거나 <버드맨>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볼 뿐이다. 게다가 연극에 새로 합류한 마이크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프리뷰를 망쳐버리고, 연극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는 리건을 아주 탐탁지 않아한다. 연극을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한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일은 또 있다. 리건에게 자꾸 낯선 목소리가 따라다닌다. 거울을 바라봤을 때의 모습도 이상하다. 그의 곁에는 다름 아닌 '버드맨'이 함께 있다. 버드맨은 리건을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리건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나 점점 연극에 자신이 없어질 때쯤 귀신같이 파고들어와 가학적인 말을 쏟아낸다. 한심한 짓 그만하고 다시 버드맨을 찍자며, 버드맨을 찍는다면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로 리건을 괴롭힌다. 연극 오픈 전날, 혼란한 그는 밤거리를 헤맨다. 그러고 오른 무대에서 그는 그를 총으로 쏴버린다.  



버드맨과 리건. <버드맨>스틸



 그가 그를 향해 총을 쏜 건,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곳곳에서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리건이 마이크를 마음에 들어했던 건, 마이크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마이크가 연극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마이크는 극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엔 진짜로 술을 마시고, 그처럼 행동했다.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샘과 마이크가 극장의 옥상에서 하던 게임은 truth 게임이었으며, 리건의 거울 귀퉁이에 있던 글귀(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도 진실에 관한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모습 따위는 보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 리건 자신마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휘청거리던 밤거리에서 그는 별안간 거울의 글귀를 깨달았던 모양이다. 종이에 쓰여 있던 '진짜로 무엇인지가 바로 진실'이라는 이치를 말이다. 그는 가짜들에 안녕을 고한다. 변기에 앉아있는 버드맨에게도 뻐큐를 날리고 버드맨과 작별한다.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환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다고(I'm not exist) 말해왔던 리건은, 이제 존재하기 위해 하늘로 날아간다. 날기 위해서는, 내가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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