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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Nov 18. 2016

#16<라우더 댄 밤즈> 상실이 그리는 색색의 수채화


<라우더 댄 밤즈> 공식 포스터 


 ‘든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상실은,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그 빈자리가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상실의 허망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방식은 여러 가지다. 추억을 미화하기도 하고 상황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 <라우더 댄 밤즈>도 가족구성원의 상실을 남겨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엄마이자 아내인 이자벨을 잃었다는 것은 같지만, 영화 주인공 각자가 느끼는 상실의 결은 분명 다르다. 


형 조나(제시 아이젠버그)와 동생 콘래드(데빈 드루이드)


엄마를 잃은 형제 


 조나와 콘래드는 이자벨의 아들들이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조나, 격정의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콘래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의 상실을 받아들인다. 아빠 진은 콘래드에게 엄마의부재를 대신할 만큼 커다란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방과 후 콘래드를 염탐하는 어긋난 방식으로 나타난다. 콘래드는 엄마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비뚤어진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조나는 이런 가족들과는 다르게 꽤 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조나는 사실 버티고 있을 뿐이다. 조나는 엄마와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였다고 자신하고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전혀 없다고 생각하려 하는 듯 하다. ‘다행이야, 엄마가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다행이야, 나와 엄마는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 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합리화 한다. 엄마의 의뭉스러운 죽음에 자신의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다. 아빠 진이 엄마를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발끈하는 조나의 모습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전에 자신의 기숙사에서 지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진은 조나에게 엄마가 조금 우울했었다고 밝힌다. 하지만 조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자는 아빠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고 제멋대로 콘래드에게 엄마는 정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번 더 전한다. 조나는 엄마를 그런식으로 기억하는 것은 슬프다고 말한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엄마의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반면 콘래드는 수 많은 상상으로 상실의 간극을 메운다. 콘래드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엄마의 사인을 모르는 인물이다. 따라서 콘래드의 상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엄마가 죽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다. 가끔은 동물을 피하려다가 차에 부딪히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하고, 아빠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전쟁 현장에서 폭탄을 맞는 모습도 생각한다. 콘래드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종종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엄마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며 현실 도피를 꿈꾸기도 한다. 노래를 엄청나게 시끄럽게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게임에 몰두하기도 한다. 슬픔을 잊기 위한 방법이다. 혹자가 보았을 땐 콘래드는 아빠 말을 듣지 않는 문제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그 또한 상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운 유약한 소년일 뿐이다. 



아내의 상실에 대처하는 진(남편)


 아빠 진은 이자벨이 죽고 난 후 좋은 가장이 되기 위해 힘쓴다. 하지만 약간 어긋난 방식으로 다가간다. 매일 오후 학교가 끝나면 콘래드를 미행하는데 이미 콘래드는 눈치를 챈지 오래라 콘래드와 진의 사이는 더욱 더 서먹해진다. 진은 자신과 콘래드의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 ‘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계속 노력할 뿐이다. 진은 아내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듣게 되는 데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고요하다. 가끔은 어떤 소리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영상도 차분하다. 종종 눈동자가 빤히 보일 정도의 클로즈업 장면이 등장하면 모두가 숨을 죽인다.하지만 평온하고 나른한 고요함이 아닌 태풍의 눈과 같은 조용함이다. 조금만 벗어나도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것, 상실은 그런 것이다. ‘Louder than Bombs’, 영화의 제목도 상실의 특질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상실은 언제나 버겁지만, 남겨진 자들이 그것에 대응해 나가는 과정은 각자의 서사가 된다. 종군기자였던이자벨이 전쟁 현장에서 담았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감독은 남겨진 사람들이 색색의 모습으로 견뎌내는 이야기를 한 폭의 영화로 담았다. 붓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한껏 빼고, 한없이 옅은 색으로. 상실에서 피어오르는 섬세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가득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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