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사랑의 의지에 대하여
사랑의 유일한 동력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컷어느 날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는 파견직으로 도축공장에 들어온다. 모두 새로 들어온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그녀의 특이한 성격으로 도저히 친해지지 않는다. 공장의 재무이사로 일하는 엔드레(게자 모르산이)도 그녀를 마주치지만 직장 동료 예뇌(졸탄 슈나이더)는 그녀는 철옹벽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건네준다. 하지만 한동안 엔드레의 시선의 끝엔 그녀가 있다.
마리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고 혼자 지내왔던 마리어는 엔드레에게 눈길이 간다. 엔드레와 한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면서 그가 왜 그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의 어떤 사람이 발정제를 훔쳐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고 범인을 가려내기 위한 심리 상담을 받게 되면서 알게 된다. 둘은 어젯밤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눈이 내린 하얀 숲을 함께 돌아다니는 기묘한 그 꿈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둘은 서로 전날의 꿈을 물으며 점차 가까워져 간다.
엔드레와 마리어의 꿈 속 내용.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컷이쯤 되면 마치 '꿈'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꿈을 꾼다는 내용은 영화 절반 정도가 지나야 등장할 정도로 꿈은 하나의 매개에 불과하다. 그들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은 '둘의 의지'다. 물론 영화에서는 꿈 이야기 이전에 둘의 관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서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꿈'이 둘 사이에서 특별해질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애의 시작들을 복기해보자. 상대방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 기뻐하고 그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았던가.
둘의 의지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둘의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전제를 깔고 있지만 둘은 좀 더 특별해 보인다. 먼저 엔드레는 왼쪽 팔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 자체를 지난하다고 여긴다. 마리어는 타인과 원만한 관계 형성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여전히 어린이 상담사에게 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레고로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마리어는 엔드레가 사랑을 믿지 않고 몸이 불편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엔드레는 마리어가 자폐를 앓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연인이 되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타인을 겪어보지 못한 마리어와,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었던 안드레와의 격차는 아주 크다. 안드레는 그만의 속도로 안드레에게 다가가지만 마리어는 매우 버거워한다. 이 과정에서 안드레는 마리어와 자신의 생각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기 시작한다. 그래도 마리어는 계속 안드레에게 다가간다. 음반점에서 사랑에 관한 노래를 줄창 듣는다든지, 인형을 만지며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을 연습한다. 포르노를 보며 공부하기도 한다. 마리어는 점차 안드레의 속도에 자신을 맞춰간다. 안드레 역시 마리어의 사랑의 속도를 이해하게 된다. 결국 둘은 연인이 된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틸컷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다. 서로의 마음속 한 구석을 내어주면서, 자신의 울타리를 조금씩 걷어내면서 가까워지는 둘을 담았다. 결핍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속도가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를 흘려보내지 않을 의지 하나로 맞닿았다. 결국 사랑의 동력은 여기에서 온다. 서로를 지켜내고 싶어하는 의지는 사랑의 유일한 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