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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Apr 21. 2018

#84 <레디 플레이어 원> 덕후가 되어보니 알겠어요

이제야 보이는 것들

 




 사람들은 흔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덕후들을 위한 영화라고들 말한다. 어느 덕후도 아니었던 나는 당연히 영화에 빠져들 수 없었다. 마치 아무와도 친하지 않은 술자리에 불려 가서 남들 웃을 때 따라 웃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도 접어 둔 채 저렇게 가상의 게임 세계인 오아시스와 그 개발자 홀리데이(마크 라이런스)에 열광하는지, 홀리데이의 유언(게임 속에 숨겨 놓은 세 개의 열쇠를 찾는 자에게 유산과 오아시스의 운영권을 수여한다는 내용)을 믿고 따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말도 뜬금없었다. 분명 이 영화는 덕후들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화요일, 목요일에는 게임 접속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덕질은 당연히 매일 하는 거지 않나. 셧댜운제 결말은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와 <더 킹(2016)>의 결말(당시 선거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는 투표를 독려하며 끝났다.)이 생각나는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사랑이 세상을 구한다'같은 진부한 이야기라니, 화려한 CG로 쌓아 올렸던 얼마 되지 않은 기대감마저 맥이 탁 풀렸다. 그래서 내게는 '호'인 영화가 아니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였다.


길거리에서 덕질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장비를 갖춘 파시발은 애초에 될성부른 덕후였다.   <레디 플레이어 원>스틸컷


 그러다 갑자기 난 한 배우님께 거하게 치였다. 내 인생의 덕질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덕후의 기질은 모두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게 맞았다. 혼란스러웠던 입덕 부정기를 거치고 어엿한 덕후로 거듭나고 있는데 문득 <레디 플레이어 원>이 생각났다. 그리고 하나하나 이해 가기 시작했다. 아직 덕후가 아니었던 난 덕 중의 덕,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하기엔 덕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덕질의 기본은 정보

  파시발(웨이드/타이 쉐리던)과 아르테미스(사만다/올리비아 쿡)는 홀리데이의 유언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홀리데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몇 년도 무슨 날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의 진정한 덕후다. 심지어 홀리데이의 일상이 담긴 영상을 보고 또 본다. 이를 통해 홀리데이의 의중을 상상하고 짐작한다. 그리고 결국 열쇠를 찾아내고 만다.


 당시 영화를 볼 때는 이 부분이 지나친 비약이라 불평했었다. 무지했다. 반성한다. 덕질을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최애의 기본 정보를 탐독하는 일이었다. 홈페이지와 SNS, 네이버 기본 프로필 정보부터 나무 위키까지 모든 정보를 내 머릿속에 욱여넣는 게 우선이었다. 정보를 알 수 있는 모든 루트를 찾아냈고 매일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비록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 과정을 통해 최애와 심리적으로 가까워진다. 덕력이 최고치에 오르면 말투 하나로 최애의 감정 상태를 추측 가능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결코 비약이 아니었던 것이다.


덕질 전에 현생 있다

 결국 열쇠를 모두 찾은 파시발은 오아시스의 경영권을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요일, 목요일 게임 셧다운제다. 사실 이 내용이 영화 중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덕질을 하다 보니 알겠다. 덕질은 혐생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현생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걸. 현생을 잘 살아야 덕질도 그만큼 잘할 수 있다.


 우선 빨대를 꼽을 수 있는 통장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덕질 통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면 사실 행복한 덕질이 불가능하다. 어덕행덕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차피 덕질을 할 거 행복하게 하는 게 낫지 않나. 최애가 공연이라도 한다 치면 회전문(한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을 돌아야 할 것인데 텅장(텅 빈 통장)으로는 자첫(자신이 처음으로 보는 공연)이 자막(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는 공연)이 되는 불상사가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체력이 중요하다. 덕질을 하기에 하루는 너무 짧다. 그 짧은 하루를 덕질로 알차게 채우려면 튼튼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지쳐도 오늘 뜬 최애의 기사나 영상을 보고 자는 게 덕후의 일생 아닌가. 종일반(하루에 공연이 여러 번 있을 때, 모든 공연을 보는 것)을 졸지 않고 보기 위해서도 체력은 필수다. 최애의 퇴근길까지 보려면 누구보다 민첩한 몸이 필요하다. 공연장이 고층에 위치한 경우 1층까지 다치지 않고 아주 빠르게 뛰어와야 퇴근길 1열을 선점할 수 있다.


최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누군가는 덕질이 밥 먹여주냐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말 덕질이 밥을 먹여주기도 한다. 성덕이 되기 위해, 최애와 일적으로 만나려 열심히 생을 살아내는 이들도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파시발과 그의 클랜들도 결국 덕질 덕에 경영권을 갖고, 유산을 나눠 가졌다. 이 모든 것은 현생을 치열하게 살아냈기에 가능했다. 정말 최애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와도 같다. 스필버그는 이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어떤 것을 열렬하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내 게임을 즐겨줘서 고맙네'라는 홀리데이의 말은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에게 바치는 응원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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