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왈츠 F#단조 No. 9, O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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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왈츠 F#단조 No. 9, Op. 40
https://youtu.be/bKnufwxoLyw
어서와, 악보는 간만이지?
한참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난 까막눈처럼 악보를 보지 못했다. 한 음, 한 음 칠 때마다 조표를 생각하며(파..도..솔..레..라..미..시) 가까스로 오른손 자리를 찾아나가야 했고, 왼손은 아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이음줄과 붙임줄을 어떻게 쳤던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은 건 음표요 하얀 건 빈 공간이니. 뻗뻗하게 굳어버린 왼손은 원격 방송처럼 한 박자씩 더디게 소리를 냈고, 오른손은 마음이 급해 자꾸 이상한 음을 눌렀다. 그 와중에 보이는 p(피아노, 여리게 치기)를 보고는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ff(포르티시모, 아주 강하게 치기)의 소리를 내었다. 소리는 피아노 학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망했다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감도 사라져갔다. 터치감이 가벼운 업라이트 피아노로도 지금 소리가 잘 나고 있지 않는 수준인데, 무거운 그랜드 피아노로 레슨을 받으려니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분명 건반을 누르고는 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옆에서 나를 북돋아주셨다. '수영님, 괜찮으니까 자신있게 건반을 눌러주세요!' 그래도 소리는 자꾸 묵음이 되었다. 아무리 초견*이라지만 정말 처참했다.
*초견 : 악보를 처음 보는 것
조금 더 행복하려고 피아노 학원에 온건데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악보를 아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기분이었다. 곡을 바꿔야 하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셨을 때는 아주 쉬워보이는 곡이었는데 내가 치려니 너무 어려웠다. 옛날에는 이 정도의 악보는 초견만으로도 따라 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내 피아노 감각은 0에 수렴하다못해 마이너스로 넘어가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런 수준이면 바이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준이 아닌가, 체르니 100을 해야하나, 내가 원하는 만큼 치려면 10년은 쳐야 하는 수준인건가 무서웠다.
그렇게 울적하게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피아노 치는 내가 나왔다. 그런데 꿈에서의 나는 하논도 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