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왈츠 F#단조 No. 9, Op. 40 (2)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색한 사이였던 피아노와 그래도 인사 정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 가까워졌달까. 여전히 회사에서는 늦게 끝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피아노 학원에 도착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매주 일요일에는 손톱을 바짝 깎는다. 하루에 세 번씩 전자 피아노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옷을 걸어놓는 또 다른 옷걸이가 될 거라는 친구들의 말에 마음을 다시 다지는 날들의 반복이다.
피아노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하는 루틴은 하농이다. 손가락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최소 10번씩은 연습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달라 꽤 우습다. 하농은 따분하다고 생각해 한 번이나 치고 선생님이 그려놓은 동그라미를 모두 채워놓곤 했었다. 그땐 몰랐지, 하농이 기본 중 기본이라는 걸.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곡을 연습하는데 가장 애먹었던 부분은 멜로디였다. 이 곡은 유난히 왼손과 오른손이 주고받는 멜로디가 많은데 오른손은 어찌어찌 치더라도 왼손이 문제다. 오른손보다 느리고, 더디고, 명확하지 않고, 힘조차 없다. 음 자체도 낮아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오른손의 멜로디보다 도드라지게 표현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샾도 많고 손가락 번호가 익숙하지 않아서 왼손 음표를 익히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선생님은 멜로디를 들으면서 치면 좀 더 수월해질 거라고 말하셨지만 악보를 보기에 바빠 멜로디가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열심히 연습해 어떻게든 멜로디도 살리고 곡의 악상까지 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놨는데 페달도 밟아야 했다. 지금까지 연습할 떄는 페달 생각 없이 연습했어서 모든 연습이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손도, 마음도 다시 심란해졌다. 평소 잘 치던 곳들에서 미스터치가 나오기 시작했고, 박자와 멜로디 역시 무너졌다. 이 곡에는 악센트가 정말 많은데 마음만 급한 나는 자꾸 엉뚱한 곳에 악센트를 만들었다. 운동도 막 시작한터라 넘치는 힘으로 아주 크게 말이다. 선생님은 그럴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셨다. 그도 그럴것이 이 곡은 거의 p(피아노)가 셈여림의 전부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랐다. 직장인이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 직후부터 밤이 깊기 전까지, 딱 1~2시간 뿐. 층간소음 걱정이 없는 전자 피아노를 사고 싶어 매일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전자 피아노를 꾸준히 치는 사람을 찾아보기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연습을 하지 않았을 때의 내 연주는 아주 형편없었다. 선생님도 바로 알아차렸다. 연습, 무조건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레슨이 있는 날은 택시를 타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더 일찍와 피아노를 쳤다. 레슨이 끝나더라도 문이 닫히기 전까지 남아서 연습을 했다. 가끔은 운동을 거르고 대신 연습을 했다. 주말에도 약속을 가기 전, 아니면 다녀와서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 그렇게 부지런히 연습해 딱 한 달만에 곡을 마쳤다. 첫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