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아라베스크 No.1, 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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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아라베스크 No.1, L. 66
https://youtu.be/XMVmQAW0CM8
느긋한 성격인데도 피아노를 칠 땐 경주마처럼 바쁘다. 겹세로줄 무시는 물론이고 다른 테마가 시작되든 말든 쉼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뭉뚱그린다. 레슨에선 여유 없이 달리고 있다는 피드백을 늘 듣는데, 아무리 색색깔로 악보 위에 쉼표를 그려놓아도 멈추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페달링이 많은 곡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발을 쉽사리 뗐다간 곡이 영원히 끝날 것 같은 두려움에서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수영님'이번엔 한 가닥의 얇은 실처럼 음이 남아있어요, 이번엔 좀 굵은거 세 가닥이요.' 하며 짚어주시데, 손은 어찌저찌 뗀다고 하더라도 발엔 아직 미련이 절절하다.
누에고치처럼 실만 무한대로 뽑아내고 있던 내게, 선생님은 허공에 있는 흰 구름에 첫 발을 떼는 것처럼 쳐보는 건 어떻냐고 말씀하셨다. 정말 아름다운 말이라고 느끼면서도 구름에 발을 디뎠다간 추락할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차마 뱉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타고타고 내가 허공에 발을 디뎌본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보기에 이르렀다. 문득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 하늘을 디뎠던 찰나가 떠올랐다.
이륙을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다 엄청난 부유감과 함께 몸이 두둥실 떠올랐던 순간을 기억한다. 세상은 털끝 하나 없이 고요해지고, 발구르기의 여운이 남은 발은 미처 걷지 못한 한 두 걸음을 공중에서 걸었다. 진공같던 그 시간에 허공에 내디뎠던 첫 발의 느낌을 기억한다. 다시 세상의 소리가 들렸을 땐, 이미 날고 있을 때였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음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아무런 소리가 없는 정적속에서야 노래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이야기를 새로 시작할 때에도 전의 이야기를 끝맺어야 하는 것처럼, 악보에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을 터였다.
'허공에 첫 발을 떼는 듯한 느낌으로.'
고질적인 버릇을 바로 하기엔 이보다 더 완벽한 말은 없었다. 이제서야 호흡의 순간을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