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피아노의 장점과 장점
작년 여름에 나는 (전)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터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성격이 초단위로 망가져가고 있었고 체력은 바닥을 찍은 지 오래였다. 숨구멍이 절실했다. 어느 날 야근을 하던 중 집 앞 피아노 학원이 눈에 밟혀 덜컥 수강료를 내버렸고, 그렇게 취미 피아노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흔히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고 하면 무엇이 좋은지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돌아보니 내 삶의 모든 방향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짧다면 짧은 일 년이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어 보려 한다.
첫째, 일과 나 사이에서 균형 찾기
피아노를 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야근의 빈도수였다. 당시 나는 정말 매일매일 야근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업무 시간 안에 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주어졌고 무조건 모두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였었다. 하지만 새벽 두 세시까지 매일을 남아 일을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항상 남아서 야근을 하려는 내게 팀 선배들은 그냥 퇴근하라며,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했지만 그 당시에는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전체적으로 침체되었고 일의 효율도 바닥나며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쳇바퀴 돌 듯 돌았다.
그러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갑자기 주어진 업무(^^...) 때문에 레슨을 취소하는 적이 초반에는 굉장히 많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두세 달이 지나니 그래도 한 달에 레슨은 모두 갈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 그러면서 나도 변하고 있었다. 꼭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좋을 일들이 구별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일에만 너무 매몰되어 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체감했다. 나와 일을 분리하는 법을 서서히 깨우쳐갔다. 퇴근을 하면 스위치를 off 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느끼며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었다.
둘째,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
두 번째로는 순수한 애정을 가졌을 때 내가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됐다. 생각보다 나는 피아노를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레슨 날이 항상 기다려졌다. 어떻게든 레슨을 가기 위해 애를 쓰는 내가 있었다. 주말 늦잠을 포기하고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는 내가 있었다. 약속이 있더라도 잠시라도 학원에 들러 연습을 하고 가는 내가 있었다.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악보를 챙겨가 연습실을 구해 피아노를 치는 내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었다. 나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누적되는 회사 스트레스에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완전히 무기력해지거나 온몸에 날을 세우고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마음과 머리로 느끼는 감정을 손에서 풀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조금씩 그렇게 피아노를 치며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단단해지니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감이 왔다. 만약 전에는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였다면, 피아노를 치면서부터는 분노의 이유와 그래서 이다음에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직을 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셋째, 덕질을 더욱 정교하게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곡을 듣고, 공연을 다니긴 해도 막상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팬인데, 조성진 님의 연주를 왜 좋아하는 질문에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를 배운 후로는 감상이 많이 달라졌다. 내가 왜 이 곡을, 이 연주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특히 평소에 자주 들었던 곡들을 하나씩 연습하곤 하는데 악보를 아예 모르고 봤으면 놓쳤을 부분들을 찾아가며 감탄하는 묘미가 있다. 결과적으로는 덕질을 더욱 뾰족하게 하게 된 셈이다.
넷째,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모든 악기가 그렇듯 피아노도 역시 예민한 악기라 사소한 변화에도 소리가 바뀌곤 한다. 처음에 가장 경악스러웠던 건 기분에 따라서 터치뿐만 아니라 곡 분위기가 매번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피아노를 치기 전 항상 내 지금 기분은 어떠한지 먼저 확인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조곡이 장조 폭탄 곡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치면서는 내가 곡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집중해 손으로 옮겨 내야 한다. 감정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 터치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바뀌어 버리고 만다. 머릿속으로 음 하나하나를 누를 때마다 나의 내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완벽하게 몰입하는 그 순간이 매일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연습을 할 때마다 한 두 시간 따위는 금방 지나가 버릴 정도로 항상 즐겁다.
그래서 오늘도 난 피아노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