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만 더 커졌으면
1. 피아노를 치는 내게 짧뚱한 손은 매번 한계로 다가온다. 특히 옥타브로 올라가거나 내려와야 하는 구간은 얼마나 많은지. 화음에서 안 닿는 부분이야 한 음을 빼거나(크흡) 어찌어찌 다른 대체음을 찾아본다고는 하지만, 옥타브로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은 더할 음도, 덜할 음도 없다. 그럴 때마다 짧은 손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2. 절망적인 건 어디선가 듣고 너무 좋아 반했던 곡들이 옥타브 천지이거나 그 이상일 때다. 악보를 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내가 칠 수 있는 곡인지부터다. 옥타브가 조금만 많으면 가차없이 포기한다. 물론 옥타브 연타가 껴있거나 육손이가 아니고서야 칠 수 없는 화음이 가득한 곡은 칠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3. 한 번 눈으로 거르고 곡을 골랐다 하더라도 언제나 옥타브는 있기 마련이다. 여러 방법으로 노력을 해보지만 그래도 닿지 않은 곳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곡을 만진다. 비슷한 소리를 내는 음을 찾거나 정 힘들다 싶으면 음을 빼버린다. 그럴 떄마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4. 손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이 많으니 사람들을 볼 땐 자연스럽게 손부터 보게 된다. '손 한 번 대봐도 될까요?' 하며 어수룩한 작업 멘트 같은 걸 말할 때도 더러 있다. 다른 마음은 없다. 그저 길쭉한 손을 가진 그 사람을 한껏 부러워할 뿐.
5. 그러다가 가끔 어린 피아노 영재 친구들을 유튜브에서 마주할 때면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저 친구들은 페달도 밟지 않고도 이렇게 영롱한 소리를 내고, 작은 손으로 치면서도 어떻게든 옥타브 같은 소리를 내는 데 역시 난 연습이 부족한 거였구나 싶다. 최근에도 유튜브에서 지찬이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한참을 반성했는데... 유튜브에서 커버 피아노 연주로 유명한 지찬 유튜버님은 나보다도 손이 훨씬 컸다.
6. 세상은 발전하고 있으니까 손을 늘리게 해주는 수술도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피아노 선생님께 은밀하게 여쭤봤지만 그런 수술은 없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