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ㅠ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항
평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으니 2주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달랐다. 챙겨야 할 준비물도 일반 여행과는 비견되지 않았고, 등산 지식에 전무한 내겐 정말 어려웠다. 등산 스틱을 꼭 가져가야 할지, 스패츠가 진짜 필요할지, 바람막이를 가져가야 할지 경량 패딩을 가져가야 할지 날밤을 새며 검색해봐도 뭐 하나 자신 있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다녀온 사람들은 각각 말이 달랐다. 모두의 말을 들었다간 배낭이 20Kg는 될 것만 같았다.
결국 아빠에게도 묻고, 산티아고를 다녀온 지인에게도 물으며 꼭 필요한 것만 갖춰나갔다. 이러는데만도 2주가 부족해 출발날 당일까지 몇 개의 택배는 오지 못했다. 문제는 더 있었다. 등산화는 어떻게 신는 건지, 끈은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 배낭은 어떻게 싸는지, 어떻게 매는지.. 등산 용품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등산화는 내 발에 맞게 길들여야 한다는데 딱 한 번 신은 게 전부였다. 그래도 파리에서 일주일은 머무르니 큰 문제는 없을거라고, 하루 이틀은 '등산화 매는 법' 같은 TIP을 찾아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다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다시 간 파리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햇빛 한 결에 웃음이, 모든 들숨과 날숨에 행복이 오갔다. 매일 같이 행복에 절여져 있는 와중에 '등산 스틱 찍는 법' 따위야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다가온 시간에 밀쳐지듯 바욘*으로 가는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출발하기 전날에는 출발하기 전날이라고 괜히 신났다. 검색창에 '산티아고 샹그리아'를 치며 내일은 샹그리아 트럭을 만날 수 있을지만 고대했다. 생수나 에너지바같은 걸 조금 사가려고 했지만 일요일이라서 마트가 문을 닫았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마을인데 생수나 간식은 내일 살 수 있겠지? 하며.
*당시 파리가 파업 중이라 생장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은 심야버스가 일반적이었다. 심야버스를 탈 경우 생장과 가까운 바욘까지만 갈 수 있고, 바욘에서 생장까지는 기차 혹은 버스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