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술’례길 D-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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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D-1일차
2018. 5. 13. 일요일
생장(Saint-Jean-Pied-de-Port)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길(Camino de Frances)의 첫날은 아주 악명높다. 배낭과 신발이 익숙하지도 않은 초보 순례자들 앞에 높디높은 피레네 산맥이 위용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루트에 따라 다르지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을 넘어야 하는 건 모두가 같은 처지다. 그리고 난 이 끔찍한 사실을 출발 전날에서야 알았다.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아주 높은 산을 넘는다는 건 보았지만 그게 첫날부터일지는 몰랐다.
더군다나 순례자 사무소*에서 잰 배낭 무게가 무려 13kg 였다. 보통 여성 기준 7-8kg가 적당하다고 하는데 이미 6kg 정도 초과된 무게였다. 사람들은 내 배낭을 보며 무조건 짐을 줄여야 한다는 걱정을 하나 둘 건넸다. 뺄만큼 뺐는데 더 이상 무엇을 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득했다. 물과 간단한 식량도 넣는다면 배낭 무게는 14~15kg에 육박할텐데 내 연골들이 안녕할지 걱정스러웠다. 유연성 평발(평소에는 발의 아치가 잘 잡혀있으나 걷거나 뛸 때, 아치가 무너지는 발)이라는 게 갑자기 무섭게 다가왔다. 15키로가 내 아치를 걸음마다 무너뜨리는 장면이 눈에 스쳤다.
* 출발 전 순례자들은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을 발급받는다. 크레덴시알이 있어야 순례자 전용 숙소에 머물 수 있고, 성당 등의 입장료가 감면되기도 한다. 또한 방문한 숙소, 바(바르), 성당 등의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사무소의 호스피탈로(순례자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내일은 가파른 나폴레옹길이 통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많이 내려 내일 출발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우회길(발카를로스길)로 가야한다고 했다. 사실 여기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이란, 그만큼 가게 등의 인프라가 잘 구축된 길이라는 뜻이고, 우회길이라는 건 완만한만큼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뜻이라는 걸. 배낭 무게에 충격을 받아버린 내게 행간을 읽을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