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밍 Dec 23. 2016

#21 <리틀 포레스트2> 소소한 크리스마스를 바란다면

<리틀 포레스트 2: 봄과 겨울> 중 겨울 편

 

 크리스마스와 이브를 보낼 쯤이면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보려고 해도 목빠지는 A와 B열 언저리를 간신히 구할 수 있으며 유명한 숙박시설이나 레스토랑은 예약이 끝난 지 오래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거리를 나가면 돌림노래처럼퍼지는 캐롤 사이로 사람과 자동차가 그득그득 채워지는 광경에 집으로 발길을 몇 번이나 돌리며 나만의 법칙이 생겼다. 크리스마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콕 박혀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다. 번잡한 바깥 세상과 다르게 '소소할 것'




이치코의 엄마가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 <리틀 포레스트 2> 스틸컷

소소함 하나, 음식을 만드는 별 일

그런 면에서 모리 준이치의 <리틀 포레스트2>중 겨울 편은 소소한 크리스마스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토호쿠 지방의 코모리라는 작은 마을인데, 상점은 옆 동네에 있어 가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곳이다. 그래서 코모리 사람들은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해 음식을 만든다. 코모리에 사는 주인공 이치코와 이치코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한 끼를 만들기 위해 한 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치코가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 <리틀 포레스트 2> 스틸컷

 영화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그렇다. 이치코의 엄마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이 시즌에 손님이 오는 날에는 빨갛고 초록색의 케이크를 굽는다. 색소를 밀가루에 대충 비벼내서 만드는 게 아닌, 그 해의 빨간 벼와 시금치 수확물로 만들어내는 색이다. 이치코는 엄마의 방식을 물려받아 자기만의 케이크를 만들어 낸다. 호박과 흑미를 사용해 노랗고 보라색의 케이크를 굽는 식이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케이크 빵을 만드는 반죽을 하고, 색을 만들어 내고, 생크림을 바르는 과정이 아주 천천히 지나간다. 



졸린 시점에 봤다면 졸았을 수도 있을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끼의 별일을 되려 발견하게 된다. 음식 하나하나는 원래 이렇게 시간이 드는 일이라는 것. 많은 수고를 기꺼워 해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이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번쩍이며 쿵쾅거리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소소하고 소중하다. 






소소함 둘, 겨울일상의 그 자체

<리틀 포레스트2> 겨울편은 겨울이 만연한 영화다. 따뜻한 코타츠 안에서의 광경이라든지, 군고구마를 구워먹는 모습은 일상 그자체다. 영화는 요리 뿐 아니라 집안의 일상도 비춘다. 집을 보수하고, 무작정 걷기도 하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소소한 일들로 채워진 이치코의 일상. 



어떠한 갈등 관계도 없고 해결해야 할 사건도 없이 흘러가는 영화는 연말연초의 바쁜 회사 생활과 폭등하는 대출 금리 따위의 생각에서 '내 일상'으로 포커스를 바꾼다. 게다가 난로 주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앉아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 먹는 장면을 보다보면 정겹기까지. 모락모락 나오는 김이 추위에 얼어붙은 마음을 달래준다. 



우리가 바라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겨울이 되면 코모리는 눈이 한 가득 내린다. 친한 친구와 다툰 후 오르는 눈 언덕에서, 우체부아저씨와 담소를 나누는 장면에서 온통 눈을 만날 수 있다. 눈이 시리게 하얀 화면을 보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분도 낼 수 있다니! 크리스마스에서 보기에 정말 제격인 영화다.


<리틀 포레스트2> 스틸컷.




매거진의 이전글 #45 <엘르> 제목이 'Elle'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