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뮤지컬 <위키드> 리뷰 - 첫 번째
뮤지컬 <위키드>의 서울 첫 공연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여섯 번을 관람했다. 처음 극이 올라간다는 소식만 들었을 때는 많아도 두어 번 정도만 볼 생각이었지만 첫 공연을 보는 순간 단번에 무너져버렸다. 두 달 반 동안 새벽 두 시 넘어서는 취소표를 주으러 다니고(취소표가 풀리는 시간은 사이트마다 다르지만, 내가 예매하는 사이트의 취소표 줍줍 시간은 2:00 ~ 2:30 사이였다) 오랜만에 트위터를 다시 깔아 '위키드 양도'를 눈 빠지게 찾아 헤매던 나날들이었다. 극이 인기가 많아 거의 매회 매진인 게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nn번을 보고 모든 잔고를 거덜 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회전문을 돌고 또 돈 건 위키드가 그만큼 좋은 극이라서다. 유명한 소설 <오즈의 마법사>와 동명 소설 <위키드>에 기반한 만큼 탄탄한 스토리와 완벽한 캐스트는 물론이거니와, 보면 볼수록 새로운 부분들이 계속 튀어나와 더 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같은 극을 여러 번 보다 보면 조금은 지루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졸리기는커녕 첫 넘버부터 아쉬워서 눈물이 고이는 그런..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과 뮤지컬 <위키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소제목은 모두 한국판 <위키드>의 넘버에서 가져왔습니다.
해석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 <Wonderful(원더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뮤지컬 위키드는 사악한(wicked) 초록 마녀 엘파바(옥주현, 손승연 역)와 선한 북쪽 마녀 글린다(정선아, 나하나 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렇기에 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개념도 '선'과 '악'이다. 첫 넘버부터 <No one mourns the Wicked(한국 버전 : 악한 자, 넌 위키드)> 일 정도로 넘버나 대사에서 선과 악은 직접적으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지금까지 선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악(惡)에 대한 판단 기준도 흐려진다. 우리가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서 보았던 초록색 악한 마녀와는 조금 다른 마녀, 엘파바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선한 마녀 글린다도, 모두가 숭상해 마지않는 절대자 마법사도 <오즈의 마법사>와는 다르다. 게다가 선과 악(good/wicked)은 계속해서 노래 가사로, 대사로 되풀이되며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우리에게 판단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오즈의 마법사가 엘파바에게 말한다.
"진실은 보이는 것과 다르단다."
이 한마디에 선악을 가르려는 모든 시도는 무용해진다. 마법사의 말처럼, 진실은 오직 본인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의 조합된 기억과 가공된 소식으로 입을 통해 전해 듣는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선악 역시 제3자가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선행은 정말 순수했던가 - <No good deed(비극의 시작)>
그렇다면 좋은 의도로 행동한 행위자는 선(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사실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라도 충분히 악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뮤지컬 <위키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행한 대부분의 일들이 본래 의도한 바와는 다른 결과로 나타났다. 선과 악은 상황이나 사람에 관계된 유기적인 개념이라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의도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면, <마블> 시리즈에서 타노스는 사람을 포함한 우주 원소 절반을 날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핑거 스냅 한 방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 타노스를 악한 자, 빌런으로 규명하지만 타노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우주 원소 절반을 날린 후, 자신이 통치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타노스는 이를 '선'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렇게 선과 악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주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의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선'으로 가닿을 수 있을지를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관적인 영역에 위치하는 선과 악을 객관적인 영역으로 끌어와야 하는 데 있다. 객관성은 또한 사회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특질이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행동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동시에 '악(惡)'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위키드>에서도 나쁜 행동임을 인지하는 순간들이 몇 군데 등장한다. 글린다가 엘파바를 골탕 먹이기 위해 거짓말로 못생긴 모자를 준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 엘파바가 <As long as you're mine(나를 놓지 마)> 직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야.'라는 대사(오리지널 버전에서는 'I feel wicked'라고 말한다), 피에로가 처형을 당하기 전 글린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전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또한 2막의 넘버 <No good deed(비극의 시작)>에서 엘파바가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의도를 파헤치려는 장면(심지어 모두 지극히 선한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의도의 객관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 분량이 길어져 다음 글로 이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