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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01. 2022

겁이 좀 나더라도
자꾸만 시선이 기우는 곳이 있다면

- "계속 시작을 주저하게 됩니다. 놓고싶진 않은데."

겁이 좀 나더라도 자꾸만 시선이 기우는 곳이 있다면

Oneself│피터 홀린스, <어웨이크>





 맞이할 준비도 다 못한 채 새해는 늘 찾아오네요. 마냥 반가운 마음만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 다짐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찰나이기도 하죠. 혹시 이번에야말로 꼭 시작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낯선 시도는 늘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두려움을 달가워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익숙함에 머물기를 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찾아오죠. 단념은 곧 일상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지고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지 않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잘하면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와 같은 소란들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물음들이 끊임없이 메아리쳐 들리기에 괴로운 상태가 끊이질 않죠. 가슴 안에 응어리가 턱 하고 걸린 채 내려가지 않는 불편한 상태, 그 응어리가 계속 자라는 것만 같아 점점 답답해질 뿐입니다.     


 사실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계속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다면, 그때는 머리가 아닌 두 다리가 답일 텐데 말이에요.     

 


# 철저한 준비라는 늪


 해가 또 한 번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저 또한 다가서고자 하는 이상향이 있고, 꾸준히 발을 구르고 있다지만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준비가 더 필요하다며 자꾸 숨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책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네요. 더 이상 다짐과 보류의 반복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길잡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도움닫기가 되어줄 만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로 피터 홀린스의 <어웨이크>란 책이고 ‘정체된 삶을 깨뜨리기 위한 심리 서적’이란 소개 문구에 마음이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루는 버릇과 완벽주의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다. (중략…) 미루는 버릇의 정의는 간단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실행을 연기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이를 자연스럽게 해줄뿐더러 행동을 억제하고 침체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사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이를 추구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가장 고차원적인 자기 학대’로 불리기도 한다. (중략…) 역설적이게도 미루기의 원동력은 제대로 해보겠다는 불타는 의지다. 그저 좌절과 실패가 두려워 그런 불안을 미루기로 분산하는 것뿐이다. 미루는 버릇을 가진 완벽주의자들은 기준이 하늘만큼 높으며, 그 기준에 닿는 게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여겨지면 우회를 통해 불안에서 옆으로 비켜선다. - 피터 홀린스, <어웨이크>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어설픈 핑계를 늘어놓다 전부 들통 난 기분이랄까요. 신중함이 늘 옳진 않음을 재차 느꼈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지기까지 기다리겠다는 건 결국, 기약 없이 미루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이제 제대로 알았습니다. 완벽주의란 늪에 가까운 것임을. 이는 의욕이 아니라 차라리 권태에 가까운 것임을.   

   


# 안전지대 활용법


 저자는 결국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익숙함 속에선 절대 변화할 수 없다면서요. 그리고 그 익숙함을 안전지대라 표현합니다.     


 만약 성장하기를 바라고, 이전과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반드시 두려움을 이겨내고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 (중략…)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에 다가가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피터 홀린스, <어웨이크>     


 물론 저마다의 안전지대를 갖는 것의 중요성도 함께 이야기해줍니다. 다만 그 안에만 머물면 정체된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거죠. 익숙함과 새로움을 넘나들며 움직이되, 돌아가 회복할만한 안정된 공간과 안락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적당한 자극은 성과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긴장도와 불안감이 지나칠 경우엔 도리어 성과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즉, 안전지대를 약간 벗어나면 하고자 하는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반면, 너무 멀리 벗어나면 불안과 공포감에 휩싸여 활동에 몰입할 수 없고 성취가 어려워진다는 거죠.      


공감합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면 그 또한 고통이 될 테죠. 어떤 시작을 위해 한없이 무모해지는 건 너무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하루아침에 생계를 놓아버린다든가 너무도 소중한 관계를 저버린다든가 하는. 현재의 생활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안정감과 소중한 것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봐요. 두 발 디딜 곳이 존재한 이후에 꿈을 좇아야만 쉽게 주저앉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압박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중간지대를 ‘적정불안’이라 하는데요. 그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선, 역시 한 발 내딛어야만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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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듣기 



# 주저앉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당연히 그 첫발은 꽤나 망설여집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당장 완벽하지 않음을 장애 요인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행동을 이끌어낼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고 덧붙이죠. 예를 들면,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진단하고 채워가는 방식으로.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너무 옭아맬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나친 자기 제어는 독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당신도 어떠한 시작도 전에 걱정부터 키우는 일은 접어두기로 하면 어떨까요.


두려움이란 우리가 주춤할 때, 그 번식력이 가장 세지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 몸이 두려움의 숙주라 한다면, 그 두려움은 우리의 발을 묶으려 들 거예요. 우리가 정체되어 있어야만 자신들이 커갈 수 있나 봅니다. 그리곤 기어이 우리의 사고에도 침투해버리죠. 근거 없는 가정들을 만들어내며. 실은 불분명하기 짝이 없는 감정들을 말이에요. 이때 우리의 머리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부풀리고 굳이 걱정할 필요 없는 사실까지 왜곡하려 들겠지요.     


두려움은 영민하게도 우리의 보호 본능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닌 장점과 활력을 흐트러지게 만들죠. 더군다나 어른이 되어갈수록 두려움에 대한 면역력도 낮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를테면,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도전 욕구 앞에서 점점 더 망설이게 되고, ‘이제는 늦었어.’라는 말을 당연스레 하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시작의 시점이 꼭 가능성을 결부 짓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경험을 통해 성장해온 당신에겐 앞선 누군가의 발자취를 경시하지 않을 넓은 시야가 있고, 각종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노련함이 있고,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초연함이 있기에.    

 

그러니 도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주저앉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자신감 갖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해요물론이는 저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데일 카네기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의심과 두려움이 자란다. 그러나 행동을 시작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커진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마라. 밖으로 나가서 바쁘게 움직여라.’

  

자 이제,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시간입니다. 

뜸만 들일 게 아니라 

공을 들여야 하지요. 

땀을 흘려야 합니다!

저 또한 부지런히 발을 굴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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