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수리 에디]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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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순간에도 활기에 차있는 사람들. 온갖 어려움에도 굳건한 사람들. 그런 이들을 존경하고 동경합니다. 그들은 유심히 보지 않아도 곧잘 눈에 띄지요. 그들의 몸 테두리에선 열꽃들이 피어오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긍정은 그 에너지의 정도가 사람들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기도 해요. 영국의 스키점프 선수 에디 에드워즈의 경우가 그랬는데요. 순탄치만은 않던 그의 비행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88년 (캐나다)캘거리 동계 올림픽경기 중에 얻은 별명인 'Eagle man’을 딴 <독수리 에디>가 영화의 제목이고요.
#1
에디 에드워즈. 그는 천진함의 귀재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가능성을 따지는 건 뒤로 미룬 채 곧바로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그렇다할 운동신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유년기부터 높이 뛰기, 허들 뛰기, 역도 등 여러 운동을 시도했지만 무릎이 깨지거나 무언가 깨뜨리기 일수였죠. 이를 반복하다보니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은 안 되겠구나.’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지요. ‘그렇다면 동계올림픽에 나가는 거야!’
에디는 곧바로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행히 적성에도 맞아 꾸준히 해나갑니다. 여러 대회에서 상도 탔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의 실력엔 살짝 미치지 못했습니다. 위원회는 그에게 말하죠. ‘자네는 딱 여기까지야. 유감이지만 선발전에 나갈 수 없어.’
안타까운 상황, 이젠 정말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발탁되지 못했는데 4년 뒤에 가능할 거란 자신이 없었거든요. 단념하려 애쓰는 와중에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게 있으니, 바로 스키점프였어요. 중계를 보며 그 매력에 홀딱 빠지게 되지요. 그의 머리가 번뜩합니다, ‘저거다!’
스키점프라면 도전해볼 만 했는데요. 당시 영국엔 선수단이 없었거든요! 출전권만 따낸다면 그대로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던 거죠. 출전역사가 52년 전으로 하도 까마득해서 선발기준 또한 그때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단지 지역대회 기록만 있으면 됐기에 조금만 노력한다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어요. 그렇게 그는 하룻밤사이에 독일, 가르미슈에 자리한 훈련장으로 떠나게 되죠. 이토록 에디는 주체 못할 기동력을 가진 불굴의 청춘입니다.
#2
당연히 이토록 엉뚱하고 긍정적인 그에 대한 질타와 무시가 끊이지 않았죠. 아버지의 걱정 어린 시선은 차차 한심어린 한숨이 되고요. 훈련장에서 마주친 타 국가 선수들의 짓궂은 조롱도 피해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선 스키점프 선수가 되기 위해 여섯 살 때부터 훈련을 시작한다는 겁니다. 헌데 이제 막 시작해서는 올림픽에 출전한다 하니, 본인들이 해온 갖은 노력이 우스워지는 기분이 들었던 거죠. 그들로썬 에디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협회에서도 좀처럼 그를 대표선수로 등록해주지 않는데요. 그를 출전시키면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킬 게 분명하단 것이 이유였습니다. 메달을 딸 가능성이 없다면 애초에 출전도 하지 않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었던 거죠. 해서 출전 기준을 높여버리기도 하고요.
놀라운 건, 그가 ‘그러던지’라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겁니다. 주눅이 들어버릴 만도한데 그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훈련에 매진해야 했거든요! 최소한의 대회 기록을 달성해야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그의 태도가 멋진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대책 없는 긍정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어리숙해 보일 뿐입니다. 현실감 없는 그의 도전이 도무지 현실적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더구나 스키점프는 생명이 달린 일이지 않습니까. 자칫하면 목숨이 온전치 못할 수 있죠. 그를 향해 모두가 외칩니다.
‘정신 좀 차려, 에디!’
#3
그러나 에디의 그 천진함 속에는 지구의 핵처럼 단단히 응축된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원망함으로 대응하지 않아요. 대신 방법을 찾아 나설 뿐입니다. 자신에 대한 무시를 철저히 무시하죠. 그리 거슬릴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도전은 ‘남 보란 듯 하는 것이 아닌, 나 보란 듯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어요. 이런 태도가 그가 지닌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건전한 자기애인가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활력을 쫒아가느라 쉴 틈이 없는데요. 그 느낌이 나쁘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 주저함을 잡아 쥔 채로 끌어주는 듯한 황홀감이 들었거든요.
마침내 에디는 그 순탄치 않던 문들을 모두 열어젖히고 드디어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됩니다. 스키점프 70미터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고 점프를 멋지게 성공해내죠. 그리 좋은 기록은 아니었음에도 그는 기쁨에 취해 환호를 내지르는데요! 이에 관중들은 의아할 뿐입니다. 부진한 성적을 내고도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던 거죠. 그런데 에디가 진심으로 포효하는 기쁨이 그들에게도 전해진 걸까요. 관중들은 이내 그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냅니다. 이에 신이 난 에디는 날갯짓을 하며 세레모니를 펼쳐 보이죠.
앞서 ‘Eagle men’이라 언급했던 에디의 별명 말예요. 그러니까 이때 나온 그 별명은 그가 멋진 비행을 펼쳐서 얻어진 것도 아니고, 멋진 성적을 내어서 얻어진 것도 아니었어요.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단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체 못하는 그의 순수함에 온 세상 관중이 환호하며 들썩였던 거지요. 에디의 모습에 감동받은 관중은 그에게 매료되었고, 모든 언론이 그를 향한 취재에 열을 올립니다.
물론 모두가 그를 인정하는 건 아니었어요. 일부 선수들은 그의 선수자격을 의심하고, 그가 사랑받는단 사실이 못마땅합니다. 몇몇 대중들도 그를 우습게 여기곤 하죠. 그들은 스포츠에 대한 에디의 진정성을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이에 에디는 잠시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요. 경기에 출전하고 나면 어떤 미련도 없을 줄 알았는데, 뭔가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비웃음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스키점프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우습게 여기는 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에겐 무엇보다 절실하고 가슴 뛰던 도전이었으니까요. 해서 그의 도전욕구가 다시 활활 타오르고 맙니다. 주변의 조롱에 짓이겨질 그가 아니었던 거죠. 마침내 기자들 앞에 서서 결의를 표하게 되지요.
“저도 잘 알아요. 저보다 더 관심 받아야 할 선수들이 많죠. 제 행동 때문에 그들의 업적이 조명 받지 못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점프를 마치고 제가 오버한 것도 잘 알고 있어요. 너무 신났거든요. 그렇다고 스키점프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건 아닙니다. 미치도록 사랑하죠. 이를 증명하고 싶어요. 그래서 90미터 점프에 출전할 겁니다.”
일전에 이미 에디에게 매료됐던 이들은 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고요. 그를 조롱하던 이들은 그가 무모하다며 혀를 찼겠죠. 그러나 그 반응에 괘념찰 것 없지요. 그는 한 단계 더 높은 도전을 향할 뿐이었습니다.
#4
그렇게 점프대에 다시 오르는 에디. 늘 당차던 그였지만 지금껏 뛰어본 적 없는 상공에 서려니 너무도 긴장됩니다. 그러나 결의를 번복할 순 없죠. 그는 숨을 깊게 한 번 고르고 두려움을 다잡습니다.
문득 그가 훈련해오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본격적인 점프 훈련을 하기 이전에 균형을 잡는 법부터 익히더군요. 멀리 뻗어가기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중심서기이니까요. 정신과 몸을 일치시키는 훈련, 그 과정을 숙달해야만 스키점프대에 오를 수 있던 겁니다. 그리고 점프대에 오른 이상, 이제는 바람이 불지 않기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도 중심 잡는 법을 익혀왔으니까요. 남은 도약은 자기 확신에 달렸어요. 이제 그는 오롯이 자기 호흡에만 집중할 뿐이죠.
바람은 언제라도 불어오며 이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 바람이라 한다면 마주한 두려움일 수도, 주변의 입김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바람들에 휘둘리지 않을 몸과 마음을 키우는 것뿐이죠. 그리고 그 별수 없음은 적수 없음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을 흩트리려는 어떠한 바람에도 오롯이 자신의 걸음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만으로 이미 한층 높은 차원의 영역에 진입한 것이니까요.
드디어 에디가 점프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그가 착지하는 순간, 일제히 환호가 터져 나오죠. 다시 한 번 그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이 순간, 순위가 무슨 의미인가요. 이 자체로 너무도 짜릿한 드라마였어요. 이제껏 주변의 놀림을 샀던 그가 이제는 그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비록 그의 도약은 짧았지만, 그의 용기는 관중의 심연까지 껑--충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끄집어내주어요. ‘나는 가능성과 주변의 눈들을 살피느라 시작조차 못하곤 하는데, 저 사람에게 중요한 건 성과가 아니구나. 저 사람에게 중요한건 그저 자신의 뜻이구나.’라는 자각을. 그리고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라는 용기를.
저 또한 그가 점프를 뛰는 모습을 보며 제 마음 속 여러 망설임을 단번에 뛰어넘는 듯한 통쾌함을 만끽했고요. 아마 에디를 향한 관중의 뜨거운 환호는 그를 향한 찬사임과 동시에 각자 자신을 향한 응원이기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의 도약을 보며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을지도 모르죠.
그로부터 배웁니다. 삶은 결국 몸을 내던진 도전들로 점철되는 거라고. 그만으로도 충분하며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그로부터 얻는 충족감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인 거라고. 바로 이 때문에 그가 그토록 순수하고 긍정적일 수 있던 거라고.
어떤 걸음이든 그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걸음이라면, 조금 무모하고 엉뚱한 시도라도 그만둬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과의 위대함은 도전의 위대함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5
끝으로 우리 이글맨의 어릴 적 한 일화인데요.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무작정 집을 나서는 어린 아들에게 엄마는 핀잔을 주지 않습니다. 그를 달래어 집으로 데려오는 건 잠시 뒤로 미룬 채 텅 빈 비스킷 상자를 건네며 말하죠. ‘여기에 메달 담아와야지. 혹시 모르잖아’라고. 이때 건넨 상자는 아들의 꿈에 대한 존중이었던 겁니다.
그날부터 상자에는 그의 부러진 안경다리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데요. 그것들은 그가 나름의 훈련도중 부딪치고 넘어지며 힘없이 꺾여버린 꿈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 와중에도 모험을 멈추지 않는 용기이기도 했고요. 이 불굴의 기백들이 쌓여서 디딤돌이 되고 계단이 되어 그를 그 높은 상공으로 올려주었던 겁니다.
그의 도약을 보며 솔직하고도 발칙한 꿈을 무작정 발설하고 또 이행하고 싶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하고 달콤하네요. 가능하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비스킷 상자를 건네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연신 상자를 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꿈에 다가서는 여러 장면을 채워가면서 말이죠. 언젠가 상자를 쥐고 흔들었을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만큼 쌓여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당신의 비스킷 상자엔 어떤 다짐이 쌓였는지요.
하늘을 뚫는 높이의 점프대 앞에서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에디에게 타국 동료 선수는 이러한 격려를 건넸다죠.
“패배자들이나 이기고 지는 것에 목매. 우리 같은 승자들은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점프를 하지. 우리 둘 만이 오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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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을 전할 때 뜸을 들여야 하는 편이어서 말 대신 글로 적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