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Mar 18. 2022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들때 1

책│오쿠다 히데오, <인더풀>에 기대어.

 이건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요. 우리는 이해받고 싶습니다. 설령 스스로도 떨쳐내고 싶은 단면이라도, 막상 상  로부터 지적을 받는다면 어쩐지 서럽습니다. 마음을 기대고 싶은 상대였다면 더욱이요. 어쩌다 서운함이 터져버리면 마음이 비딱해져 고집을 피우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져버리길 택합니다. 이해받지 못한 서운함보다 부정 받을지 모른단 두려움이 더 큰 법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혹은 내가 속해야 하는 사회가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내면의 솔직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약해진 마음, 그로인한 불안감, 힘듦을 떼쓰고 싶은 마음, 경쟁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 참기보단 분노하고 싶은 솔직함 들이요. 이는 분명 보살핌이 필요하단 감정의 적신호임에도, 차라리 억누르고 외면하길 택하곤 합니다. 솔직히 ‘나’부터도 인정하기 싫고 불편한 탓도 있고요. 그런 와중에도 마음의 불편함은 잠재우고 싶기에, 특정 행동에 의지하기도 하는데요.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 행동에 대한 집착이 커져간다는 겁니다.      


 다시 예를 들면, 소설 <인더풀> 속 인물들의 사연인데요. 불안증세의 일환인 변실금으로 고생중인 잡지 편집자가 있습니다. 그는 치료 목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곤, 전에 없던 안정감을 찾게 되죠. 그런데 문제는 수영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돼서, 수영장을 떠나는 것이 점점 두려워집니다.


 한 편,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발기가 지속돼, 일상에 곤욕을 치르는 무역회사원도 있습니다. 그 배경엔 큰 사연도 상처도 있었어요. 아내가 외도를 했고, 그래서 이혼을 했고, 아내는 외도 상대와 재혼을 했습니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겠죠? 그럼에도 그 억울함과 화를 꾸역꾸역 참았습니다. 자기 비하로써 사태의 원인과 폭발하는 감정을 무마시키려 했죠.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요. 그는 평소에도 자책이 심한 편이었고, 오랫동안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자신을 가두어 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의 억눌림이 신체 증상으로 발현돼버린 거죠.


 또한 심한 경쟁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또 증명해야 했던 배우 지망생도 있는데요. 그녀는 자아도취의 망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고, 교우관계에 목숨을 건 고등학생은 휴대폰 문자에 집착하지만 그럴수록 공허함만 커져갈 뿐입니다.


  <인더풀>의 이야기는 그동안 미봉책으로 의지했던 행동 탓에, 도리어 괴로워지진 그들이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찾아 나서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치유과정에서 발생하는 각 해프닝을 유쾌하게 담아낸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집이죠.       

   


# 작가, 오쿠다 히데오


 앞서 소개드렸듯, 이야기 속 상담자들이 지닌 사연과 증상은 모두 다르지만요. 암묵적으로 규정된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탈이 났다는 점에선, 그 발화점이 동일한데요. 저자는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틀이 개인을 짓누르기도 한다는 이면을 날카롭게 짚어내고요. 또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 속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우리의 양가적인 심리를 따스하게 보듬어줍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삶의 불안을 움켜쥐고 있고, 그로 인한 크고 작은 강박을 안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들춰내기 싫은 약점인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다 보면,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불안감은 지극히 일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소설은 나의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안으로 한껏 안아주고요. 거기에 상담자들이 마음의 병을 타파해간다는 점에서 통쾌한 만족감까지 안겨줍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소설에 빠져드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재미’입니다! 자칫 무겁고 음울할 수 있는 소재를 저자는 아주 유쾌한 전개로 풀어내거든요.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제가 자주 찾는 인터넷 서점에선 작가님을 이와 같이 소개합니다.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어라. 그는 일본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그 문제점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중략)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도 부조리한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가치를 묻는 주제의식을 보이고 있는 그는 포스트 하루키 세대를 이끄는 선두주자이다.’

- yes24. 오쿠다 히데오, 저자소개 중


 소설 <인더풀>이 이미 무구한 사랑을 받았던 <공중그네>의 후속작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이미 그 효용이 증명된 셈이죠. 지친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함과 동시에, 나의 삶을 살피도록 돕는 그의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건 당연할 수밖에요.     



# 괴짜의사, 이라부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특별한 매력을 지닙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라부라는 캐릭터였어요. 그야말로 괴짜로 등장하거든요.


 그의 언동이 어떠하냐면,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드러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데요. 심지어 어린 아이와 함께 장난감 경품에 당첨되었을 때도,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마를 떠올리게 하는 육중한 몸과 그에 어울리지 않게 얇디얇은 소리로 장난감을 내놓으라며 떼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거참. 만일 제가 그의 동행인이었다면, 헐레벌떡 혼자 몰래 숨어버렸을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상담자들에 대한 예의도 전혀 갖추지 않는데요. 큰맘 먹고 털어놓으려는 그들의 이야기를 매번 끊기 일쑤이고요, 도통 귀담아 듣질 않습니다. 증상을 알고 그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하는 의사가 말이에요!

 더 기막힌 건, 당사자는 괴로워죽겠는 고민을 별로 심각히 여기지도 않는단 겁니다. 오히려 ‘뭐 그럴 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칠 뿐이죠. 상담자들은 그의 이런 태도에 당혹스럽고, 마음속으로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 사람 의사 맞아?’     


 헌데 놀라운 건, 그들이 이런 이라부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진료를 거르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2부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